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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불 Dec 29. 2020

나는 모건을 죽였다

리 모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꼭 오래 묵은 문헌이나 땅에서 갓 캐낸 도자기 조각만을 갖고 과거를 바라보지 않는다. 특히나 가까운 현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진, 영화, 음반, 신문 스크랩, 누군가의 일기장도 소중한 '사료'가 된다. 아, 가장 생생한 구술 자료도 있다. 인터뷰란 생생한 과거의 증언이지만 동시에 객관성을 면밀하게 판단해야 하는 '증언'의 덩어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증언 자체의 객관성을 무작정 의심하는 건 안 될 일인데, 사건은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완벽히 객관적인 것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조금 과장을 섞어 이야기해 본다.


우리는 어떤 비극적인 사건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나는 모건을 죽였다 I called him mogran]는 재즈의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아티스트이자,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리 모건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은 리 모건의 아내이자 그를 죽인 사람, 헬렌의 관점에서도 쓰여진다. 헬렌의 이야기는 낡은 카세트테이프에 기록된 본인의 음성을 통해, 리 모건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증언과 세상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재현된다. 어두운 시대를 헤쳐갔던 평범한 흑인 여성이었던 헬렌의 이야기는 너무나 소박한 카세트테이프로, 10대에 이미 아트 블레이키의 밴드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던 리 모건의 이야기는 사진과 음반, 영상물과 같은 공식적 기록으로 회고되는 것 마저 두 사람의 대조적인  삶의 궤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리 모건은 화려한 스타였다. 빠르고 경쾌하게 질주하던 그의 연주처럼, 그는 순식간에 성공했고 또한 순식간에 몰락했다. 재즈 씬에서 가장 돋보이는 젊은 음악가이자 블루 노트 레이블의 카탈로그에 수많은 명반을 남긴 그는 이미 20대에 약물 중독에 빠져 자신의 업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 정착해 자신의 삶을 꾸려가던 헬렌은, 몰락의 한가운데에 있던 리 모건을 구해냈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헬렌은 아내이면서도 동시에 어머니와 같이, 그리고 매니저의 역할까지 도맡아가며 리 모건이 재기하는 것을 도왔다. 그의 동료 음악가의 말을 빌리자면, '수렁에서 건져낸' 셈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알고 있듯,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났다.


리 모건과 헬렌 모건

리 모건의 때 이른 죽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가 살인범이기에 더욱 비극적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에 관계된 두 사람의 여성, 아내인 헬렌과 당시 리의 다른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세 사람의 관계는 다시 구성된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눠야만 했던 이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영원히 말을 멈추었고, 산 자는 살아있으니 삶을 이어 간다.


리 모건의 삶은 역사 속에 살아있지만, 그 이면의 진실은 살아 있는 자의 입으로 쓰여진다. 하지만 그 또한 한 가지 관점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동료들은 리를 좋은 사람, 재미있는 친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음악가로 기억할 것이다. 헬렌은 리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던 그 순간의 기억을 죽기 직전까지 품고 살아갔다. 이 영화의 근간이 된 인터뷰는 헬렌이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진행되었다. 헬렌이 했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우리는 지금 와서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이 영화는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인 서술 사이를 넘나들며 비극적인 사건의 이면을 살핀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이야기는 할 수 있다. 1972년 2월 어느 춥고 눈이 많이 왔던 날, 고작 30대 초반이었던 한 음악가가 안타깝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https://www.netflix.com/title/80147988?s=i&trkid=1374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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