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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 Apr 09. 2020

한 줄 여행 #7

당신이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의 이유 #7

"이토록 익숙한 이방인이라니"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Bratislava, Slovakia)


제공 : 아로비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의 수도다.

그런데 슬로바키아의 수도로 살아온 기간은 채 30년도 되지 않고, 헝가리의 수도(당시 이름은 포조니)로 살았던 과거는 250년쯤 되는 묘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나라가 바뀌어도 수도는 영원한, '센터본능'일까.


사실 위치상으로는 센터와 거리가 멀다. 슬로바키아 남서쪽에 위치한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한 나라의 수도가 국경 최전방에, 그것도 두 나라와 맞닿아 있다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은 역사적 사연을 짐작케 한다.

참고로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차로 1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시간, 그리고 체코 프라하에서는 3시간 거리다.


출처 : visitbratislava.com

필수코스인 브라티슬라바성은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네모반듯한 네 귀퉁이에 미니첨탑이 상다리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테이블캐슬'이란 별명도 붙었다.

화려함보다는 실용성에 무게를 둔 듯한 이 성은 '딱딱하고 무뚝뚝하다'는 동유럽에 대한 고정관념을 환기시킨다.

 

제공 : 아로비

브라티슬라바성에서는 도시 전체는 물론 멀리 오스트리아 땅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도나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한강다리처럼 전망대도 있다. 우리처럼 강남강북으로 나누진 않지만 성이 있는 쪽은 구시가지, 다리 건너편은 신시가지다.


제공 : 아로비

구시가지는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있는데, 지도를 보지 않고 무작정 걷다보면 아까 본 듯한 익숙한 풍경을 마주할 지도 모른다.

시내 자체가 자그마해서 여차하면 간 데 또 가는 구간반복을 할 수 있으니 미리 경로를 설정해두는 이 좋겠다.


제공 : 아로비

구시가지에서는 건물들 사잇길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식당이나 가게들이 어두운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용한 골목 틈새, 이름 모를 와인 한 잔과 파채가 아무렇게나 뿌려진 투박한 접시는 어느새 이방인의 경계심을 풀어놓게 만든다.


출처 : visitbratislava.com, welcometobratislava.eu

브라티슬라바는 재미난 동상들로도 유명하다. 도시 곳곳, 건물 곳곳에서 동상이 불쑥불쑥 등장하곤 한다.

제일 잘 알려진 동상은 맨홀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엿보는 사람'이라는 뜻의 추밀(Čumil)이다.

추밀과 쌍벽을 이루는 인기 동상은 나폴레옹이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에게 끼고 싶어하는 듯한 포즈 때문에 기념사진 스팟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이 도시에서 '프레스부르크(당시 쓰인 브라티슬라바의 또다른 이름) 조약'을 맺었다고 하니 그가 동상이 되어 서있는 것이 아주 생뚱맞지는 않다.


출처 : welcometobratislava.eu, 아로비

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는 투표를 거쳐 1993년 1월 1일 슬로바키아와 체코 두 나라로 분리된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에 비해 경제규모나 인구, 인지도, 관광객 숫자 모두 크게 밑돈다. 하지만 다시 합치자는 목소리가 체코는 물론 슬로바키아에서도 나온 적이 없다고 하니 두 나라 모두 현재에 만족한다는 뜻일 테고, 그거면 된 것 아닐까.


제공 : 아로비

나라가 독립하고 다시 나뉘고, 수도는 이리로 다시 저리로 옮겨가고. 그토록 낡고 친숙한, 약자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곳.

꾸밀 줄도 모르고 친절한 척하지도 않지만 조금씩, 천천히, 서툴게 이방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이 도시는 그래서 분명 처음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브라티슬라바, 이토록 익숙한 이방인이라니."



당신의 심장을 설레게 할, 당장 배낭을 꾸리게 만들, 그곳으로 떠나야 할 단 '한 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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