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도전에는 빠름과 늦음이 없다.

자전거로 유럽 일주를 하면서 느낀점

by 현존

자전거로 유럽일주 18일차, 누적 주행거리 약 697km


오전 9시 30분

눈을 뜨자마자 간단하지만 맛있는 아침을 먹었고, 식탁에 앉아 있던 백짝꿍은 어제 독일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모과를 꺼내 들었다. 모과는 생으로 먹으면 씁쓰름하고 떫어서 잘 먹지 않는 과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백짝꿍은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이니 한입은 꼭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작은 과도로 모과를 자르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단단한지 칼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을 힘을 주고 나서야 겨우 한 조각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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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잘라놓고 보니 이게 모과라는 사실을 모르면 배나 사과로 착각하기 딱 좋은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보던 모과는 어렸을 때 아빠 차나 집에 두면 특유의 향이 솔솔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독일 모과는 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거의 향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입 먹어본 백짝꿍은 씁쓸한 맛은 있는데 달콤함도 있다며, 그런데 식감이 되게 푸석푸석하다고 설명했다.

나는 속으로 떫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백짝꿍은 생각보다 잘 먹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한입 먹어보았다.

생각보다 떫은 맛은 거의 없고 약간의 달콤함이 있는 과일 같았다.

다만 식감이 정말 푸석푸석해서 계속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모과 리뷰는 끝이 났다.


짐을 싸고 나와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우리가 있는 곳은 프랑스 Soufflenheim.

오늘은 프랑스 Erstein이라는 곳까지 약 70km를 달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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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자전거로 유럽일주를 시작한 지 18일 만에 휴식을 갖기로 결심한 날이기도 하다.

오늘 머무를 숙소는 2박 3일로 예약을 해 두었고, 내일은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지 않고 온전히 쉬어볼 생각이다.


새벽에는 비가 왔었다. 하늘도 흐릿해서 금방이라도 비가 다시 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제 비쯤이야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전 10시, 우리는 출발했다.

프랑스에서 흥미로운 점 하나는 자전거길이 생각보다 잘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에서 달렸던 것처럼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자동차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차는 많이 다니지 않았고, 지나가는 차들도 우리를 피해 조심스럽게 지나가 주었다.

그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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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리던 중 백짝꿍이 갑자기 말했다. “우리 이제 자전거 탈 날이 5일밖에 안 남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어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근데 한편으로는 얼른 이 자전거를 팔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자전거를 팔고 나면 엄청 후련할 것 같았다.


우리의 계획으로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자전거를 팔 생각이다.

그런데 백짝꿍은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팔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판다고?

나는 당연히 자전거 중고샵이나 일반 자전거 가게에 가서 팔 줄 알았다.

과연 우리의 자전거는 어떻게 팔리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사실 오늘 나는 또 하나 기대되는 것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와인이 아니라 위스키를 마실 생각이었다.

위스키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기네스를 마시러 갔다가 올드 제임슨을 한잔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먹은 위스키가 정말 맛있었다.

마침 더블린에 올드 제임슨 위스키 양조장이 있어서, 한잔 마셔보고 맛있으면 다음 날 방문해 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우리가 너무 만취를 하는 바람에 다음 날 양조장에 가지 못했다. 그게 아직도 아쉽다.

위스키의 맛에 눈을 뜨게 해준 올드 제임슨이 자꾸 생각이 나서, 내일 휴식을 갖는 김에 오늘은 백짝꿍과 위스키를 마셔보기로 했다.


그렇게 위스키 이야기를 하며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EuroVelo 15’ 사인이 나타났다.

자전거 도로가 잘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길이 너무 좋아져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유로벨로 15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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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이나 한 면만 보고 단정 짓는 것은 참 위험하다는 것.

백짝꿍은 본인이 유로벨로 대원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어딘가에서 같은 유로벨로 길을 달리고 있을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자전거를 타다 상대방에게 미소를 지어주면, 상대방도 다시 미소를 지어주는 그 순간이 참 좋다고 했다. 마치 행복을 나누는 기분이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allemagne’이라는 사인을 보게 되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독일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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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구글맵을 따라 달리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새 프랑스에서 독일로 국경이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숙소는 다시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오늘은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서 독일로, 그리고 다시 독일에서 프랑스로 국경을 두 번이나 넘는 날이 되었다.


강변을 따라 달릴 수 있는 멋진 자전거 도로가 나타났다.

그런데 백짝꿍이 저 위쪽 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며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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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기대가 없어서 아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백짝꿍이 감탄을 하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위에는 아주 멋진 강이 펼쳐져 있고, 그 옆으로 달릴 수 있는 자갈길이 있었다.

백짝꿍은 여기서 달리자고 했다.

하지만 아래에서는 그 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백짝꿍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두 번이나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둘 다 내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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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는 올라가지 않았다...ㅎㅎ 이 좋은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를 두고 굳이 자갈길을 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짝꿍은 마지못해 내려왔다.

결국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데, 우리 옆으로 엄청 큰 트럭 두 대가 지나가면서 자전거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아까 그 길로 가자!”

그렇게 우리는 다시 오르막길을 헛둘헛둘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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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까 백짝꿍이 올라오라고 할 때 올라올 걸 그랬다고...ㅎㅎ

강이 정말 멋지게 펼쳐져 있었다. 차도 다니지 않고, 강 바로 옆을 달릴 수 있는 길이었다.

우리는 이 멋진 풍경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벤치에 앉아 잠시 풍경을 즐겼다.

눈앞에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날씨는 선선했다. 너무 좋아서 텐트만 있었다면 여기서 자고 싶을 정도였다.

강물은 흐르는 인생을 보여준다고 하지 않는가.


백짝꿍이 문득 물었다. “우리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류시화 시인의 글이 떠올랐다. “바람만이 알지요.”

자전거 여행을 하며 느낀 점 하나가 있다.

유럽에서는 생각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타신다는 것이다.

머리가 새하얀 70대쯤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종종 듣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늙어서 못해.” “다 늙었는데 뭘 하겠어.” 그런데 그건 어쩌면 핑계이고, 사실은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짝꿍도 공감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플 수도 있고 무릎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우리가 그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유럽 자전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앞으로는 쉽게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짝꿍은 갑자기 부모님이 최근에 내리신 큰 결정을 떠올렸다.

부모님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따뜻한 영상 편지를 남겼다. 그 장면은 영상으로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따스한 햇살 아래 자전거를 타다가 들른 카페에서 우리는 달콤한 디저트와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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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6km만 더 가면 된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져서 다시 옷을 꺼내 입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잠바, 룰루레몬 자켓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옷을 들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좋은 옷 몇 벌만 가지고 다니며 돌려 입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부분의 옷은 룰루레몬과 유니클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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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자켓은 정말 튼튼하다. 지난번 라트비아에서 크게 넘어졌을 때 자켓은 멀쩡했고, 자켓 속에 있던 내 피부만 까지고 멍이 들었다.

이 자켓을 입지 않았더라면 훨씬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괜히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옷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이 떡 벌어지는 자전거 길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달린 길 중 가장 아름다운 길이었다.

가운데에는 강이 흐르고 있고, 양옆으로는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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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 이름은 ‘까냘 두 혼느 오 강’이었다.

자기 몸만 한 나무를 물고 가는 귀여운 강아지도 만났고, 공기도 좋고 날씨도 좋고 풍경도 끝내주었다.

이 길을 무려 17km나 달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우리는 잠시 멈춰서 숙소에서 챙겨온 삶은 달걀과 프랑스 감자로 만든 감자칩을 먹었다.

계란은 가방 안에서 이미 다 깨져 있었지만, 어찌저찌 까서 먹었는데 이상하게 더 맛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달리는데 어제부터 찾고 있던 야생 사과나무를 발견했다!

이미 잘 익은 사과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따서 백짝꿍이 먼저 한입 먹었다.

야생 사과라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새콤달콤해서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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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몇 개 더 따고 출발하려던 순간, 이번에는 보랏빛 과일이 잔뜩 달린 나무를 발견했다.

어디서 본 과일인데.. 이쪽 마트에서 장 볼 때 자주 보던 것 같은데..

궁금해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이 과일은 푸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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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보통 말린 푸룬이나 푸룬 주스로 접했지, 이렇게 생과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잘 익은 푸룬을 하나 따서 한입 먹어 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내가 먹어본 야생 과일 중 블랙베리가 1등이었는데, 오늘부로 푸룬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는 그렇게 푸룬 몇 개와 사과 몇 개를 가방에 챙겨 넣고 다시 출발했다.


달리는 길마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맛있는 야생 과일을 만나느라 자꾸 멈추게 된다.

도착 시간은 계속 늦어지고 있었지만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 앞 마트에서 위스키와 저녁 재료들을 장보고, 오후 5시에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양송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아까 따온 푸룬으로 만든 샐러드, 그리고 백짝꿍이 구운 삼겹살이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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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위스키를 한잔씩 나누며 오늘 하루 이야기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길, 강가에서 쉬었던 시간, 그리고 야생 과일들까지.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또 한 번 즐겁게 저물어 갔다.



백김밥로드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spHPSDJHcBY?si=9IZ25Qtd1fNfTT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