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01 - 의미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는 않는다. / w. 인사하는 짱구
대학생 때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한다. 그 중 일부는 충동적이고, 일부는 호기심 때문이며, 몇 가지는 단지 친구를 따라간 경우도 있다. 그 당시에는 그 선택들이 왜 필요한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주 ‘이게 나중에 뭐가 되지?’라는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삶을 지나고 나면, 그 이유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는 가볍게 느껴졌던 선택이, 훗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조각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당시에는 별 생각 없이 들어갔던 활동이나, 대충 흘려보낸 경험이 어느 날 문득 나의 강점으로 변해 있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는 분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경험한다. 이유 없이 끌린 것에 손을 뻗었던 행동이 언젠가 묵직한 이유를 품게 된다. 삶은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동안 조용히 연결되고 있다.
경험의 의미는 종종 시간이 지나야 이해된다. 지금은 아무 상관없어 보이던 순간들이 몇 년 후 하나의 패턴처럼 이어지고,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미는 즉각적인 결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거리감에서 탄생한다.
나는 어떤 경험들이 그런 식으로 내게 돌아오는지 여러 번 목격했다. 대학 시절에는 그냥 흥미로워 보였던 것들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고 싶다. 나도 감각적인 디자인이 하고 싶다. 소설을 쓰고 싶다. 이런 뜬금없는 취향들도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기반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삶을 이해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던 것들이, 시간의 축 위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간다. 그래서 성급한 결론은 필요 없다. 의미는 내가 찾기 전에 먼저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나중에 어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재료들이다. 재료는 처음부터 멋질 필요가 없다. 가루 같은 순간, 흐릿한 기억들, 실패처럼 보였던 시도들조차 재료로 쓰인다. 이 재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형태를 갖춘다.
경험을 재료로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좋은 경험만 쌓아야 한다는 압박이 줄어들고, 실패나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모든 재료는 쓰일 수 있고, 지금 당장은 의미 없어 보여도 나중에 새로운 형태로 조합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건 왜 했지?’ 싶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경험일수록 그 안에 작은 신호가 숨어 있다. 당시에는 그 신호를 읽지 못할 뿐이다. 마음이 미묘하게 움직였던 순간, 이유 없이 끌렸던 분야,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감정. 이런 것들은 모두 신호다.
나도 과거에는 그런 신호들을 가볍게 넘겼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호들은 나의 관심사와 감각이 처음 자라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지에 대한 ‘미묘한 단서’들이었다.
신호는 명확한 언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는 그 신호들이 이어져 있다. 신호는 사소한 순간에 숨어 있다.
삶을 살다 보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갑자기 이해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이 깨달음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의미 없던 일들이 어느 날 하나로 모이며 설명될 때, 비로소 이해는 도착한다. 이해는 경험보다 항상 늦게 오지만, 그 시간차가 오히려 삶의 밀도를 높여준다.
우리는 너무 빨리 이해하려고 한다. 빨리 의미를 찾고, 빨리 정리하고,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해의 속도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경험의 누적에 의해 결정된다. 이해는 ‘찾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은 몰라도 괜찮다. 이해는 살아가는 동안 천천히 나에게로 향해 온다. 그 흐름을 억지로 당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경험 그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경험이어도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어떤 사람은 실패했다고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배웠다고 기록한다. 어떤 사람은 상처로 남기고, 어떤 사람은 성장의 근거로 남긴다. 경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의미는 주관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과거의 경험들을 다시 해석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부끄러웠던 순간은 용기가 되었고, 실패라고 여겼던 시도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해석이 바뀌는 순간, 내 삶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해석은 경험보다 더 강력하다.
우리가 스스로 경험을 좋은 방향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때, 삶은 훨씬 견고해진다. 경험을 다시 보고, 다시 의미를 만들고, 다시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일은 ‘나를 성장시키는 진짜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