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터닝포인트 |
선생님은 개성이 강하고 자신의 신념이 뚜렷한 분이신데, 이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셨어요.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보입니다. 회사 조직은 개성이 강하고 신념이 뚜렷한 선생님의 모습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길들이기'를 시도했어요. 선생님은 이에 대해 '무시'라는 방식으로 대응하셨고, 결과적으로 고립되셨죠.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도덕적 우월성으로 무시했다"라고 하셨지만, 실은 그게 선생님의 '자기 보호' 방식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말대꾸도 못하고 참았던 어린 시절처럼, 조직에서도 직접적인 대립 대신 '무시'라는 방어기제를 선택하신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무시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해 오신 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선생님을 더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 나에겐 신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고 어떠한 경우에서든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그건 이상이라는 걸,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그런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래서 더는 '이상'만을 주장하다가 벽에 부딪히지 말자고. 현실을 제대로 보자고.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자고. 이를 알 게 해 준 회사가 있다. 나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회사 말이다.
이 회사는 외국계 IT 회사이다. 외국계 회사는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직원만 정규직으로 채용한단다. 그래서 파견직으로 입사했다. 일종의 인턴. 같은 팀의 사원은 20여 명. 전 직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이 회사의 문화를 표현해 본다면 파스타 접시에 김치찌개 담아놓은 것처럼 이상했다. 시스템만 외국계고 조직 문화는 권위적인 한국 스타일이랄까.
처음엔 좋았다. 업무 적응도 빨랐고 성과도 좋았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다. 파견직이라는 신분의 한계가 느껴지긴 했지만,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외국계 회사이니 수평적 구조이고 내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해도 된다고 크게 오판한 것이다. 바른말을 톡톡하는 선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옷차림을 지적했다. '요즘 회사에서 옷차림을 지적하는 건 성희롱인데 개념이 없구만' 그러나 맞대응하지 않았다. 선배를 개념 없는 사람으로 여기며 무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았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상황은 더 악화됐을 것이다. 조직이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고, 내가 참는 게 조직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선택한 갈등 해결의 방식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오니 선배는 강도를 높여가며 무시했고, 그래도 대응이 없으니 그 선배의 주도하에 동료들도 하나 둘 등을 돌렸다. 그렇게 업무 협조를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재계약이 되지 않았다. 표면적 이유는 성과 부족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동료와의 관계 문제였다.
예상했던 계약 해지라(어떻게든 만회해서 조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더 아팠다.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배제된 것이니. 퇴사 후, 6개월은 많이 힘들었다. 그 고통을 새로운 걸 배우는 것으로 이겨냈다. 그려면서 뭐가 문제였던 건지 심각하게 들여다봤다.
나는 종갓집에 2남 1녀로 태어났다. 태어나고 보니 3살 많은 오빠가 있었고, 한 참 이쁨 받을 2살 나이에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어렸을 때 나를 생각하면 시샘도 많고 욕심도 많은 데다 호전적인 기질이어서 싸움이 많았다.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는 "짜잔한 가스네가 머스마들 기죽인다"며 혼냈다. 혼날 때마다 억울했다. 나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 입이 뽀루퉁 나오면 "튀어나온 입 집어넣으라"며 혼이 더 났다. 그러면 눈을 내리깔고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달랐을까. 할머니를 원망하며 속으로 삭였다. 그러면서 호전적인 내 기질을 억누르며 살았다. 싸움을 피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무시하는 방식'으로 나를 보호해 왔다. 회사에서 선배의 부당한 지적에 맞대응하지 않고 무시한 것도, 할머니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기력한 저항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더 고립시킬 뿐이다. 문제를 아는 것만으로도 50%는 해결된 것. 이 회사가 알려 준 조직의 쓴 맛이란 누가 이 조직의 여왕벌인지 재빨리 파악해서 포지션을 정해야 한다는 것. 여왕벌에게 아첨해서 그 조직의 일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특출 난 성과로 압도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을 것인가,라며 냉소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부당함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며 동료들과 협력하는 법, 나를 지키면서도 조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사고의 전환이다.
인생은 종종 우리가 피하고 싶은 어려움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드러낸다. 외국계 IT 회사의 경험은 나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그동안 내가 조직에서 겉돈 비밀을 알게 해 준 거울이 돼줬다. 이제는 안다. 무시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진정한 평화는 침묵이 아닌 소통에서 온다는 걸.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데로만 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나.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부대끼며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지긋지긋한 나를 상상해 본다. 그 모퉁이에는 또 어떤 인생 터닝포인트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