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면서 궁금했던 것 #3
얼마 전, <비행기 타면서 궁금했던 것 PICK6>를 쓰면서 Navy와 Brown에게 ‘평소에 비행기를 타며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기내에서 뜨거운 물 펑펑 틀고 샤워해도 되는지부터 기내에서 술을 막 퍼마셔도 되는지까지… 정말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간 것은 Navy가 수줍게 내놓은 질문-
나에게 질문하라 했더니 자신들끼리 만담을 하고 있는 현장… Navy가 초딩 때부터 궁금했다는 그것에 대해 오늘 알려주려 한다. 하늘 위엔 비행기가 그렇게나 많은데 왜 안 부딪히는 걸까?
그 이유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하자!
지상에는 사람이 다니는 인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듯 하늘에는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이 존재한다. 좀 더 전문적으로는, ‘항로(航路; Airway)’라고 말할 수 있다. 차는 차도로만 다녀야 하듯이 비행기도 이 항로를 통해서만 하늘을 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궁금한 것! 지상 도로는 별도의 물리적인 공간(ex. 고속도로 등)을 만들어 길을 구분한다지만, 하늘 위 항로는 어떻게 구분되는 걸까?
위 이미지는 나의 지난 1년간의 비행 항로를 기록해놓은 것이다. ‘원 플라이츠(One Flights)’라는 사이트에 비행 출발지와 목적지, 편명 등을 적으면 비행기가 어떤 항로로 비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항로는 물리적인 선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인데 과연 이 선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자고로 선이라 함은 무수히 많은 점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항공 용어에서는 이 무수한 점들을 ‘웨이포인트(Waypoint)’라고 부른다.
웨이포인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위도와 경도로 이루어진 좌표를 이용해 항로 상의 특정 위치를 지칭하는 일종의 가상 지점이다. 지구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웨이포인트들이 존재하는데, 이중 특정 웨이포인트들을 연결해서 만든 길이 바로 항로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 항로는 고유의 항로명(ex: A595, G597 등)을 부여받음
그렇다면 관제와 조종사는 수많은 웨이포인트를 어떻게 구별할까? 항로와 마찬가지로 (위도, 경도 좌표를 바탕으로 지정된) 웨이포인트들도 각각의 고유 명칭을 부여받는다.
웨이포인트의 명칭은 대개 관할하는 국가에서 붙이곤 하는데(특정 국가의 공역에 위치한 웨이포인트들은 대개 그 국가에서 관할하는 대상이 됨), KWA04, KUZ16과 같이 알 수 없는 숫자와 알파벳 조합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간혹 그 나라의 개성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명칭이 탄생하기도 한다.
>> 일본 웨이포인트명: 기린(KIRIN;기린이찌방?), 에비스(EBISU), 라멘(RAMEN), 오니쿠(ONIKU;깨)
>> 국내 웨이포인트명: 국수(GUKSU), 다산(DASAN), 독도(DOKDO), 자두(JADOO), 진로(JINRO;소주?), 소식(SOSIK; 소식해야지…)
이제 비행기가 어떻게 항로명과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길을 찾는지 (아주 간단하게) 알아보자.
모든 비행기는 *AIRAC이라는 웨이포인트 모음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AIRAC 데이터는 비행기 조종 장치 중 하나인 *FMC(비행 관리 컴퓨터)에서 사용된다.
조종사는 AIRAC 데이터를 기반으로, FMC에 항로명과 웨이포인트 고유 명칭을 하나씩 입력해준다. 좌측 VIA에 항로명을 입력하고, 우측 TO에 웨이포인트를 입력하는 순서! 이렇게 설정하면 이제 비행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순조롭게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FMC(Flight Management Computer): 자동 조종과 GPS 등이 연결된 장치로, 항공기의 경로와 함께 각종 옵션, 무게 등을 입력할 수 있음
*AIRAC(Aeronautical Information Regulation And Control): 각국의 항공교통 관련 기관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협력해 한달 주기로 만드는 웨이포인트 정보 모음
지상에선 수많은 자동차를 통제하기 위해, 지면 위에 복수의 차선을 만들었다(ex. 2차선, 3차선 등). 그 차선은 시멘트 벽 또는 페인트 칠된 선 등을 통해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는 어떨까? 사실상 지상에서와 같이 어떤 표식을 남기기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하루에도 수천 대의 비행기가 날아다니는데 이용할 수 있는 항로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비행기들의 ①수평 간격을 멀리 떨어뜨리는 거나(비행기들이 일정 간격을 두고 비행) ②‘비행 고도’를 달리하는 것(비행기들이 수직의 차등 고도로 비행)이다.
비행 고도 같은 경우에는, 비행기의 비행 방향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자북(자침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방향)을 기준으로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 방향이 0~179도 내일 경우 1000피트 단위의 홀수 고도에서 비행하고, 180~359도 내일 경우엔 1000피트 단위의 짝수 고도로 비행해야 한다.
김포↔제주행 비행기들을 예로 들어볼까? 우선 우리나라의 *최저 비행 고도는 약 8000피트! 김포발-제주행 비행기의 비행 방향은 약 190도로, 이 경우 비행기들은 짝수 고도(2만 피트, 2만 2000피트, 2만 4000피트 순)로 비행하게 된다.
반대로 제주발-김포행 비행기의 비행 방향은 약 10도로, 이 경우 비행기들은 홀수 고도(2만 1000피트, 2만 3000피트, 2만 5000피트 순)로 비행한다.
*최저비행고도: 항공기를 안전하게 조종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
지금까지 내용만 봤을 땐, 하늘길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만 같다. 웨이포인트에 따라 안전한 지점으로 항로도 만들어 놨고! 효율적으로 비행 고도까지 계산하며 통제 루트를 다 짜 놨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복병은 있는 법! 그 복병 중 하나가 바로 ‘병목현상(Bottleneck)’이다. 마치 어린이날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도로가 헬인 것처럼, 하늘에도 특정지역에 항공편들이 몰리게 되면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앞서 말했듯 ①수평 간격을 멀리 떨어뜨리는 거나 ②‘비행 고도’를 달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특정 항로엔 순식간에 많은 비행기들이 몰리게 되는데, 항로가 이 수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면 정체가 되고, 그렇게 항공기가 지연되는 것이다.
국제 항공운송정보 제공업체인 ‘OAG(Official Airline Guide)’가 2017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약 12개월 간 전 세계 항공 노선을 조사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국제선 구간 TOP 10>이다.
1위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노선! 한해 동안 무려 3만 537편의 항공기가 이 구간을 드나든 걸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하루 평균 세계에서 가장 바쁜 노선에는 서울↔제주 국내선이 선정됐다. (하루 평균 비행기 약 178편, 시간당 10편)
이렇게 오늘은 비행기들이 하늘 위에서 부딪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글에서는 항로에만 초점을 뒀지만, 실전에서는 비행기 조종사와 관제사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한 법! 이 밖에도 비행기에는 *TCAS(Traffic Collision Avoidance System)라 불리는 공중충돌 방지 장치가 있어 비행기가 공중충돌을 하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TCAS: 항공기의 공중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상 항공 관제 시스템과는 독립적으로 항공기의 주위를 트랜스폰더를 통해 감시하여 알려 주는 충돌 방지 시스템
“Navy! 보고 있나요?! 초딩 때부터 궁금했던 궁금증이 풀렸나요!!”
앞으로도 비행기들이 항로를 따라 안전 비행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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