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인천-쿠알라룸푸르 비즈니스클래스 탑승기
| 말레이시아항공과 미제사건
말레이시아항공이 독자들에게 어떤 인상일지 모르겠다. 어떤 항공사인지 전혀 모르고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싱가포르항공이나 캐세이퍼시픽 같은 주변 유수의 항공사들처럼 좋다고 이름 날리는 것이 아니니 그저 그렇겠거니 마음 속으로 순위 매긴 자들도 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라는 국가의 위상을 함께 가늠해볼 수도 있고, 익숙한 휴양지인 코타키나발루를 떠올리며 비행기보다는 펼쳐진 바다와 넘실대는 해초, 뜨거운 볕을 그대로 받아내는 야자수를 그려볼 수도 있겠다.
그 가운데, 인도양 한가운데로 곤두박질 치는 보잉 777의 도리 없이 커다란 기체가 떠오르며 온몸이 으스스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2014년 쿠알라룸푸르를 떠나 베이징으로 가던 여객기 MH370편이 난데없이 교신이 두절되고 인도양 위 잔해로 떠오른 그 사고. 말레이시아항공이 악명을 떨치게 된 계기이자, 스카이트랙스 선정 5성급 항공사에서 폐업 위기에까지 몰리게 한 원흉이다.
이후 다섯 달이 채 안되어 다시 한 번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되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레이시아항공은 절벽으로 향하는 돌이킬 수 없는 급행열차를 탄 듯 계속되는 경영 악화를 겪는다. 1년새 두 번의 사고를 일으킨 보잉의 신기종 737 MAX8이 현재 전체 운항중단에 감산이라는 결과에 직면한 것처럼, 말레이시아항공도 단기간에 연속적인 충격을 안긴 만큼 5년이 지났지만 회복세에 접어드는 것은 요원한 듯하다. 오히려 에어아시아가 말레이시아 항공산업을 대표할 만큼 세계적인 저비용항공사(LCC)로 성장해버려, 더더욱 플래그캐리어로서의 명성을 잃어가는 중.
| A380은 A380
그렇게 폐업이니 매각이니 소문이 떠돌며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항공사를 왜 이용했냐 하면, 비즈니스클래스가 더없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5년 전 두 번의 사고는 항공사 운영이나 서비스와는 동떨어진, 어쩌면 불운, 아니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파일럿 개인의 일탈 때문 아닌가. 대한항공도 아직 발 딛지 못한 5성급 항공사의 명예를 거머쥐었던 말레이시아항공인데, 저렴한 가격에 안 타볼 이유가 없다. 이번 출장에서는 인천-쿠알라룸푸르 구간을 왕복 130만원대에 예약했지만, 종종 60만원대에도 비즈니스클래스 표가 풀리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인천-쿠알라룸푸르 구간은 에어버스의 점보기 A380으로 운항한다. 프고가 A380을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이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큰 투자를 받고 성대한 포부로 출시되었지만 항공사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지 못해 생산중단이 되어버린 마지막 점보기. 퇴역하기 전에 닥치는 대로 타보아야 추억으로라도 남길 수 있는 멋진 기종이다.
하지만 잠깐, 말레이시아항공의 A380은 2019년 3월 31일부로 인천-쿠알라룸푸르 노선에서 물러서고 좀 더 작은 기종 A330-300이 그 자리를 꿰찼다. 하계 스케줄만 작은 기종으로 운항하는 건지, 앞으로 영영 인천에는 오지 않을 셈인지 알 수는 없다. 이번 리뷰에서는 떠나기 전 간신히 붙잡은 말레이시아항공 A380의 면면을 담을 것이지만, 인천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인 다음 리뷰에서는 A333을 그려볼 예정이니 두 기종을 비교하는 재미도 기대할 수 있다.
| 비즈니스클래스, 그리고 또 비즈니스클래스?
서론은 여기까지. 이제 직접 말레이시아항공을 경험해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떠난다. 인천에서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떠나는 항공편은 시간대가 좋다. MH0039편으로 밤 12시 10분에 출발할 수도 있고, MH0067편으로 오전 11시에 출발할 수도 있다. 이번 비행은 상쾌하게 아침에 길을 나서는 MH0067편으로 택했다.
A380, 정원이 500명 가까이 되는 기종인만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3시간 전부터 이코노미클래스 줄에 늘어섰다. 비즈니스클래스 줄에 서있는 사람들도 적은 수는 아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보인다. 비즈니스 줄이 두 개? 비즈니스 스위트(Business Suite)와 비즈니스 클래스(Business Class)로 나뉘어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로 예약했다면, 지체 없이 ‘비즈니스 클래스’ 줄에 서면 된다. 말레이시아항공은 지난해 12월부터 퍼스트석 명칭을 비즈니스 스위트로 변경해 판매 중이기 때문.
이는 많은 기업들이 임직원 출장 시 일등석을 예약할 수 없도록 하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기존 일등석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지만, 분류를 바꾸어 수요를 늘리겠다는 계획. 물론 가격도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의 중간 정도로 책정해 진입 장벽도 낮췄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단어가 두 개라 혼동이 빈번한 듯하다. 뒤에 서있던 아저씨 한 분이 ‘비즈니스 스위트는 뭐고 비즈니스 클래스는 뭐야…?’ 중얼거렸다. 너무나 궁금했는지 순서를 안내하는 지상직 승무원에게도 질문했지만, 그분도 대한항공 소속이라(말레이시아항공은 대한항공과 공동운항한다)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항공에디터의 오지랖을 발휘해 “비즈니스 스위트가 퍼스트예요.” 이르곤, 그분이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 인도 첸나이로 가는 비즈니스맨이라는 TMI까지 획득하고 말았다.
| 항공사협회 라운지
말레이시아항공은 스카이팀이나 스타얼라이언스가 아닌 ‘원월드’ 소속이고, 인천공항에서 국적기가 속하지 않은 원월드의 대우는 조금 박하다. 대부분 원월드 항공사는 비즈니스클래스 라운지로 항공사협회 라운지로 향하게 되는데, 이곳은 듣는 순간 작은 탄식이 나오는 공간이다. 티켓을 보니 전에는 대한항공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던 듯하다.
지난번 프고의 아메리칸항공 댈러스 출장때도 항공사 협회 라운지를 이용했다. 자세한 리뷰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캐세이퍼시픽을 통해 이용했던 후기는 여기 있다.
좁은 복도에 차려진 요깃거리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라운지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 회의실을 개조해 만든 것 같은 룸 안에는 낮은 소파들이 들어가 있고, 음악 하나 흐르지 않는 적막한 공간에서 쉬게 된다. 굳이 옆자리가 아니더라도 같은 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을 지경이다. 안 친한 사람의 결혼식에 온 듯한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이 든다. 전자기기를 충전하며 쉬려는 목적이든 짬을 내 업무를 볼 요량이든 배를 좀 채울 작정이든 카드 혜택 등을 이용해 다른 라운지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라운지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오자 게이트 앞에 보딩을 준비하는 말레이시아항공 A380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큰 복층의 기체와 네 개의 엔진…. 이런 멋진 돌고래가 생산 중단이라니! 슬픈 마음을 가다듬으며 카메라에 담았다. 종종 다른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도 이쪽 게이트로 다가와 근엄한 A380의 모습을 구경했다.
|캐빈 살피기
본격적으로 기내를 둘러보기 전에 좌석 배치를 살펴보자. 2012년 도입된 말레이시아항공의 A380은 3클래스 구성으로, 8석의 비즈니스 스위트, 66석의 비즈니스 클래스, 412석의 이코노미 클래스로 채워져 있다. 이번에 예약한 좌석은 비즈니스클래스로, 총 66석 중 절반도 안되는 29명의 승객이 탑승했다. 말레이시아항공이 왜 이 노선의 운항기종을 500석가량의 A380에서 300석 정도의 A330-300으로 변경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비즈니스클래스 시트는 2-2-2 배치로, 불편한 부분이 있다. 요즘은 대부분 1-2-1 배치라 모든 좌석에서 복도 접근(Direct Aisle Access)이 용이한데, 이경우 복도석 탑승객이 시트를 젖히고 잠에 들었을 경우 창가석 사람은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말레이시아항공을 포함해 콴타스,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대한항공 등이 A380에 시트를 2-2-2 구조로 배열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부재는 2-2-2 배열의 숙명이다. 보다시피 옆좌석과 찰싹 붙어있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새로 나온 시트들의 철저히 프라이빗한 구조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괴로울 수밖에 없지만, 아이나 노약자 등을 케어해야 하거나 신혼여행 같은 경우라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착석과 함께 서브되는 웰컴드링크는 말레이시아항공의 시그니처 드링크인 ‘와우 에마스(Wau Emas)’로 골랐다. 파인애플주스와 판단 시럽, 라임즙을 소다수에 섞은 음료다. 판단 특유의 꿉꿉한 향과 파인애플주스의 상쾌함이 어우러진 독특한 맛이다.
앉아서 살펴보는 시트: IFE 컨트롤러는 손때의 흔적이 있고, 좌석 기울기를 조절하는 버튼도 보기 드물게 조잡하다. 보통 기령 10년이면 퇴역하는 A380이기에, 7년 정도 된 기재라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장점은 창가 좌석에 널찍한 스토리지가 두 개씩 있다는 사실. 기내용 캐리어까지는 무리지만 보스턴백 정도는 가볍게 들어가는 크기다. 노트북과 셀카봉, 액션캠과 두꺼운 책들을 잔뜩 넣어도 자리가 남았다.
앞뒤간격(pitch)은 74인치로 넓다. 1-2-1 배열이라면 조금이라도 피치를 좁혀 좌석수를 확보할테지만, 2-2-2배열이라 가로로 좌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IFE 스크린 아래 보이는 손잡이들도 모두 스토리지로, 오버헤드빈을 사용할 필요 없이 웬만하면 짐정리는 시트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이륙과 동시에 스타터로 말레이시아의 꼬치요리인 사테(Satay)가 나온다. 카트를 끌고 온 승무원이 바로 땅콩소스를 얹어서 주는 방식으로, 소고기와 닭고기 중 고르거나 둘 다 맛볼 수 있다. 같은 문화권인 싱가포르항공에서도 마찬가지로 선보이는 사테가 매우 생소한 맛이라는 소문을 전해들은 탓에 궁금했는데, 말레이시아항공의 사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맛이었다. 땅콩소스의 달고 고소한 맛과 잘 구워진 소고기와 닭고기의 부드러운 식감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소스를 아래까지 발라서 구워 손으로 잡고 먹다 보면 틀림없이 손에 묻는다.
|본격 기내식 탐방
기내식은 11시 출발 항공편이라 점심으로 제공하고, 인천에서 출발하는 만큼 삼계찜 같은 한식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요리 오크라 마살라(Okra Masala)가 포함된 것으로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식사와 곁들일 수 있는 술로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찾지만, 어떤 종류의 위스키를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작은 재미다. 아쉽게도 싱글몰트 위스키로는 글렌리벳만 준비되어 있어 온더락으로 주문했다.
*셰프 온 콜
말레이시아항공은 노선마다 정해진 식사가 아닌 특별한 기내식을 맛보고 싶은 탑승객들을 위해 ‘셰프 온 콜(Chef On Call)’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싱가포르항공의 ‘북 더 쿡(Book The Cook)’과 같은 서비스로, 미리 먹고 싶은 기내식을 선택해 예약해두는 것. 출발 24시간 전에만 주문하면 나를 위해 따끈하게 준비된 기내식을 맛볼 수 있다.
▶싱가포르항공 북 더 쿡(Book The Cook) 서비스 엿보기
노선별 메뉴는 말레이시아항공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노선에서는 안심 스테이크, 한식 떡갈비, 중국식 닭튀김인 꽁빠오지띵, 한식 해물찜 등 총 네 가지의 메뉴가 있다. 셰프 온 콜 서비스는 메인 메뉴에 국한된 것으로, 에피타이저나 디저트는 당일 제공되는 메뉴판과 동일하다.
에피타이저는 연어 그라블락스와 브로콜리 스프 중에 택할 수 있었고, 연어 요리로 결정했다. 토마토와 양파, 케이퍼와 레몬이 함께 나온다. 소금과 후추 앞 종지에 든 것은 버터와 드레싱이고, 작은 그릇에 김치도 앙증맞게 담겨있다.
셰프 온 콜로 예약한 메인 요리는 페퍼콘 소스를 끼얹은 안심스테이크다. 가니쉬로 웨지 감자와 방울 토마토, 양송이버섯, 데친 시금치가 나왔다. 굽기는 사전에 정할 수 없는데, 썰어보니 웰던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인 탑승객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했는데, 평소에 소고기를 웰던으로 먹는 편은 절대 아니지만 뻑뻑하거나 부담스러운 식감은 아니었다.
디저트는 버터스카치 케이크와 하겐다즈 바닐라 아이스크림, 제철 과일 중에 고를 수 있다.
탑승객들의 식사가 끝나면 기내 조명이 어두워지며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시트에 탑승할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커버를 씌우고 담요를 덮었다. 리클라인 기능은 풀플랫까지 문제없이 작동된다.
막간을 이용한 화장실 탐방. A380 답게 공간은 넓으나 다른 항공사들의 A380에 비해서는 다소 깔끔하지 못한 인상을 주는 인테리어다. 7시간이 되지 않는 비행이라 개인 어메니티가 제공되지 않았는데, 이곳에 덴탈키트나 빗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A380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복층 구조를 보여주는 계단. A380의 로워덱(lower deck)과 어퍼덱(upper deck)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항공사마다 다른데, 말레이시아항공의 경우 1층은 퍼스트와 이코노미, 2층은 비즈니스와 이코노미로 채운다. 사진에 보이는 계단은 비즈니스클래스 화장실 옆에 위치하고, 내려가면 퍼스트클래스가 나온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더 캄캄해진 기내. 탑승객들에게 에비앙 생수를 한 병씩 나눠준다.
서너시간이 남은 비행 동안 심심하다면 에그 누들을 주문해봐도 좋다. 대한항공의 라면 같은 말레이시아항공의 간식 메뉴다. 아무때나 주문할 수 있는 음식으로는 이 에그누들과 샌드위치, 제철과일이 있다. 새우와 완자, 청경채 등이 듬뿍 들어가 개운한 맛이다. 흰 트레이에 정갈하게 차려진 비주얼이 메인 메뉴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랜딩 시간이 다가오자 한 승무원이 테 타릭(Teh Tarik)을 권했다. 홍차와 우유가 들어간 말레이시아식 밀크티로, 달고 따뜻해 몸이 노곤해지는 맛. 쿠키와 함께 먹으면 흔들의자에 앉은 말레이시아 할머니라도 된듯이 충만해진다!
|총평
싱가포르항공과 말레이시아항공
말레이시아항공이 5성급 항공사로 선정됐던 2012년까지만 해도 싱가포르항공은 그들의 경쟁사 중 한 곳이었다. 현재는 세계 최고의 항공사라고 평가받는 싱가포르항공과 폐업 위기에 몰린 말레이시아항공을 비교선상에 올린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불과 7년 전만해도 가능했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말레이시아항공과 싱가포르항공은 원래 한 항공사였다! 1947년 말라얀 항공(Malayan Airways Limited)으로 시작했던 두 항공사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추방되면서 1966년 말레이시아-싱가포르 항공(Malaysia-Singapore Airlines)으로 변경되었다가, 1972년 결국 말레이시아항공과 싱가포르항공으로 분할된다.
그렇기에 기내 서비스부터 비슷한 점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기내식 스타터로 땅콩소스를 뿌린 사테를 미리 나눠주는 전통이나 캐빈 크루 유니폼 등이 그렇다.
사롱 케바야(sarong kebaya)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 전통 의상을 모티브로 한 두 항공사의 유니폼은 말레이시아항공과 싱가포르항공이 나눠지기 전인 1968년 피에르 발망이 제작했다. 목부분과 디테일한 무늬를 제외하면 바틱 문양을 비롯한 전체적인 모양새가 상당히 유사하다. 기내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말레이시아가 자원도 없는 작은 섬인 싱가포르를 골칫거리라며 추방해버렸다가, 선진국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배 아파하는 모습이 흔한 ‘구남친’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또한 싱가포르항공과 나눠졌을 때 그 작은 섬나라의 항공사가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날개를 펼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며, 위풍당당하던 말레이시아항공이 불운으로 추락할 줄은 더더욱 내다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아득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비슷하고, 이렇게도 달라져버린 두 나라. 저렴한 비즈니스클래스 가격으로 말레이시아항공을 이용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싱가포르항공과 비교해보며 두 나라의 흥미로운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6시간 30분의 문화체험
말레이시아항공의 강점은 비행 경험동안 말레이시아의 문화를 톡톡히 경험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전통 복장을 차려 입고 승객들을 맞는 캐빈 크루, 이륙 전 기내방송을 통해 읊어지는 이슬람 기도문, 판단 시럽이 들어간 웰컴 드링크, 기내식 전 나눠주는 사테, 입가심으로 그만인 전통 차 테타릭까지.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레이시아의 풍요로운 문화 속에 푹 적셔진 기분이었다. 말레이인과 중국인과 인도인이 한데 어우러진 다민족 국가인만큼, 하나의 고정된 인상을 고집하기보다 다양성 자체를 포용하는 것 같은 점이 재미있었다. 낡은 기재에 아주 훌륭한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하늘에 있는 시간동안 말레이시아항공이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겨보며 그들만의 특색을 톡톡히 체험할 수 있어 알찬 비행이었다.
프레스티지고릴라의 더 많은 항공 이야기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