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베가스에서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기분이 궁금하다. 기분이 좋다면 부디 ‘뒤로 가기’를 누르시길. 왜냐고? 당신의 기분을 해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당신의 기분을 끌어내릴 지도 모른다. 여기 방문했던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각종 신랄한 비판과 감정적인 불평, 편파적인 불만을 쏟아낼 예정이다. 그래도 이 리뷰를 읽겠다면, 출발하기 전에 감정의 벨트를 단단히 매시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좀 아는 사람들에겐 선망의 이름이자 꿈의 브랜드다.
최초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뉴욕은 ‘뉴욕의 왕궁’이라는 별칭을 가진 최고급 호텔로 뉴욕시가 지정한 공식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그 뿐 인가. 뉴욕에 지어진 최초의 호텔이자 지어졌을 당시에는 세계 최대의 호텔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었다.
팩트만 늘어놓아도 반짝반짝한 이 호텔이 무려 라스베이거스에 생겼단다. 완전히 새로 지은 건 아니고, 본래 영업하던 만다린 오리엔탈 라스베이거스가 월도프 아스토리아로 새단장을 한 후 오픈한 것. 오, 그럼 라스베이거스 호텔 취재라면 여긴 무조건 가야 겠네. 가기 전부터 기대가 잔뜩 부풀어 오른다. 와, 나 드디어 월도프 아스토리아 간다. 그것도 새 거…!
길지도 않은 인트로를 굳이 욱여 넣은 건 내가 월도프 아스토리아라는 브랜드에 정말 기대가 컸다는 걸 밝히기 위해서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커진 건 아니냐고? 아니, 내가 방문 전 얼마만큼의 기대를 했느냐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돈 아까운 호텔이다. 기대가 컸다는 말을 집어넣은 건 ‘월도프 아스토리아’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기엔 자격 미달이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서다.
외관은 멋지다. 중간에 조명으로 테두리 쳐져 있는 층이 로비가 위치한 23층이다. 이곳에 로비와 각종 레스토랑, 바, 라운지가 위치해 있다. 참고로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는 호텔과 레지던스를 동시에 운영 중인데 호텔은 4층부터 22층까지, 레지던스는 24층부터 47층까지 배치돼 있다.
위치도 좋다. 코스모폴리탄 다음으로 스트립 대로변과의 접근성이 좋았다. 월도프는 라스베이거스의 또다른 대형 호텔인 아리아 리조트와 인접해 있는데 이 아리아 리조트를 경유하는 고가보도가 있다. 호텔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이 고가보도에 진입할 수 있고 고가보도를 따라 쭉 생각 없이 10분 정도 걷다 보면 스트립이 나온다.
라스베이거스의 여타 호텔에 비해 소박한 입구. 측면에 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로고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 입구가 월도프라고 생각하지 못할 테다. 하긴, 입구가 뭐 중요하겠습니까. 호텔이 내실이 있으면 되지.
로비는 23층에 위치해 있다. 레지던스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호텔이 사용하는 층이 4층부터 22층이니 로비가 가장 최상층에 위치한 셈이다. 그래서 로비를 스카이 로비라고 부른다.
라스베이거스 여타 호텔과는 달리(이 말이 자주 등장할 예정) 아담한 로비. 보유한 총 객실 수가 392개이니 로비가 만리장성만큼 클 필요는 없지만, 딱 보는 순간 좀 작은 거 아닌가 싶었고, 역시나 체크아웃때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2월에 방문해서 시즌 장식은 역시나 중국풍 돼지. 로비 규모가 크지 않아서 장식이라고 할 법한 건 저게 다였다.
다행히 직원들은 굉장히 친절했는데, 그 덕분에 이때까지도 빵빵하게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공갈빵 인줄도 모르고.
내가 묵었던 룸은 가장 기본 룸인 시티 뷰 룸이었다. 투숙료는 260,207원. 리조트 피는 포함 안된 금액이니 리조트 피 포함하면 30만원 정도. 출장으로 온 호텔이니까 내 돈이 아니라 회사 돈(남의 돈)으로 온 건 데도 아깝다. 남의 돈마저 아깝게 만드는 호텔입니다 여기가.
*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 객실 구성
- 일반 객실(2종): 시티 뷰 룸, 스트립 뷰 룸
- 스위트(9종): 월도프 주니어 스위트, 파노라마 스트립 뷰 원-베드룸 스위트, 시티 뷰 원-베드룸 스위트, 빌라 원-베드룸 스위트, 펜트하우스 파노라마 스트립 뷰 스위트, 프레지덴셜 원-베드룸 스위트, 프레지덴셜 투-베드룸 스위트, 그랜드 프레지덴셜 투-베드룸 스위트, 프리미어 프레지덴셜 쓰리-베드룸 스위트
시티 뷰 룸은 들어오자 마자 왼편에 옷장과 서랍 등 각종 수납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객실에 옷장이 있으면 답답해 보이기 마련이라(예를 들면 벨라지오 라스베이거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마음에 들었다. 수납 공간이 넉넉한 점도 흡족했다. 옷장 안에는 가운과 슬리퍼가 놓여 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가스의 객실 크기는 47m². 벨라지오 라스베가스 파운틴 뷰 객실과 동일한 사이즈다. 그 외에 방문했던 윈 라스베가스와 코스모폴리탄 라스베가스는 10m² 정도 넓어서 좀 더 개방감이 느껴진다.
흠, 이상하다. 2018년 8월에 월도프 아스토리아 간판 달고 운영을 시작했다는데, 왜 낡아 보이지?
답은 간판 갈이에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라스베이거스가 영업을 종료한 게 2018년 8월 30일,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가 공식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게 2018년 8월 31일이다. 리뉴얼, 리모델링, 이런 거 전부 갖다 버리고 정말 간판만 바꿔 달았다.
곳곳에 남아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의 흔적. 아니, 월도프 아스토리아는 자존심도 없는 거야?
침대 맞은 편에는 작은 테이블과 낡은 소파, TV, 미니 바, 책상이 있다. 아, 물론 만다린 오리엔탈에 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의자도.
다행히 침대는 꺼진 부분이 있거나 얼룩진 부분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곳곳에 노후의 흔적이 보일 뿐.
가죽으로 만들어진 침대 프레임이 오래되면 저렇게 헤지고 벗겨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거야 오래됐을 때의 얘기이지, 작년에 데뷔한 (나름) 신규 호텔에서 볼 광경은 아니다. 간판 갈이의 폐해는 이런 부분에서 나타난다. 고객이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것. ‘월도프 아스토리아’라는 이름 때문에 상상했던 일정 수준의 기대감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것 말이다.
침대 사이 협탁에는 탁상 시계와 전화기, 메모 패드가 놓여 있다. 신규 호텔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객실 컨트롤러도, 이 곳에선 볼 수 없었다.
침대 맞은 편에는 TV와 얼음 통 등이 놓여 있다. 사진에 보이는 생수는 유료다. 이 곳에서는 무료 생수를 제공하지 않는다. 라스베이거스가 워낙 물 인심이 야박한 동네라 그 정도는 이제 그러려니 한다.
미니바의 구성. 냉장고 안의 것은 건드리면 센서로 인식돼 자동 과금 된다. 내가 방문한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호텔이 이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지만, 월도프 아스토리아야 말로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이 가장 아이러니였다. 방 안의 그 어떤 것도 자동 시스템이 아닌데, 이 미니바만 선진적(?)이다. 아니, 심지어 방 안의 수동 시스템(전등 스위치 등)조차 제대로 인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뭐시 중헌디, 이 양반들아.
실온 미니바와 컵 및 전기 포트.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는 이조차 평범함을 거부한다. 정말 대단해…!
보이시죠? 커피포트에 자리잡은 물 때(?)의 위용이!
물 때인지 다른 얼룩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걸 보고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특급 호텔은 물론이고 4성급 호텔에서도 이렇게 적나라한 물 때를 보기란 쉽지 않은데, 호텔의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충격의 미니바 섹션 옆에는 책상이 자리잡고 있다. 책상 위에도 전화기가 놓여 있는데, 이 전화기가 또 웃기다.
버젓이 만다린이라고 표시된 전화. Mandarin Room 1008. 아무리 간판 갈이한 호텔이라고 해도 간판 바꿔 단지 반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건 정말 기가 찬다. 호텔에 기본적인 관리가 되고 있긴 한 걸까? 아니, 그보다 힐튼은 어째서 여기에 굳이 월도프의 간판을 달아야만 했을까? 객실 컨디션의 전반적인 관리 수준은 힐튼의 중저가 브랜드인 더블트리만도 못한 게 현실인데.
책상 서랍에는 멀티어댑터가 비치돼 있다. 객실 곳곳에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 보니 이게 뭐라고 감동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대다수 특급호텔에서는 투숙객이 요청할 경우 멀티어댑터를 빌려주긴 하지만 아예 객실에 비치돼 있으면 따로 요청할 필요 없어서 편한 것도 사실이다.
객실 뷰는 스트립 뷰가 아닌 시티 뷰인 탓에 크게 볼 건 없다. 대신 호텔 로비 옆에 있는 라운지나 바에서는 나름 멋진 스트립 뷰를 볼 수 있으니 참고하자(굳이 이 호텔에 간다면). 라운지에 대한 더욱 자세한 설명은 밑에서!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솔직히 말해서 욕실 하드웨어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방문한 5군데의 호텔 중 가장 좋았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마감과 두 명이 들어가도 거뜬한 사이즈의 욕조, 욕조 옆에 놓인 배쓰솔트 등… 그래서 객실에서 깎아 먹은 점수를 욕실에서 만회하나 싶었는데.
일단 좋은 얘기부터. 욕조가 정말 크고 아름답다. 유려한 곡선을 가진 욕조에서 그.나.마 특급 호텔의 잔재를 찾아볼 수 있었달까. 배쓰솔트도 사용해 봤는데, 향도 은은할 뿐만 아니라 왠지 피부가 미끌미끌 좋아진 기분까지 들었다.
화장실의 넓이 자체는 이 지역 동급 호텔 중 넓은 편은 아니다. 다만 전반적인 공간 배치가 알차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었다. 거울 우측에 까맣고 작은 직사각형은 TV 화면.
세면대에선 페이스 수건과 비누, 바디로션, 면봉, 화장 솜, 샤워캡을 찾을 수 있다. 어메니티는 일본 비즈니스 호텔들보다도 단출한 구성이다.
세면대 서랍에서는 체중계와 헤어드라이기, 고데기가 놓여 있다. 고데기가 있는 호텔은 여기가 유일했는데 멀티어댑터에 이어서 이 곳 나름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었다.
욕조 맞은 편에는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다. 좌측이 샤워실, 우측이 화장실이다.
화장실. 별다른 특이점은 없다.
문제의 샤워실. 샤워실에 대해서 할 말이 꽤 많은데, 이 샤워기는 한 번 틀면 잠기지가 않는다. 애초에 이게 어떻게 잠겨져 있었는지조차 의문일 정도였다. 정말 별 짓 다해봤는데 완전히 잠기지가 않더라. 덕분에 샤워기에서 내내 조르륵 조르륵 소리가 났고, 프론트에 연락해서 엔지니어까지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방을 바꿔 달라고 하면 바꿔줬겠지만 어차피 다음 날 다른 호텔로 이동해야 해서 그냥 참고 잤다. 에휴.
어메니티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제품.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가스의 피트니스 센터는 8층에 위치해 있다. 운영 시간은 06:00~익일 02:00까지고 보다시피 규모는 작은 편이다.
운동 기구는 모두 테크노짐 제품이다. 규모가 작아서 좋은 점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다는 것.
수영장 역시 피트니스 센터와 마찬가지로 8층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수영장을 둘러싼 빌딩뷰를 감상할 수 있다. 장점이자 단점은 수영장에 그늘이 질 때가 많다는 건데, 무더운 여름엔 장점이 될 것이고 가뜩이나 쌀쌀한 겨울엔 단점이 될 것이다.
수영장은 총 2개의 메인 풀에 자쿠지가 한 개 마련된 구성이다. 너비는 좁지만 길이가 길게 빠져서 시원시원한 인상을 준다. 선베드의 색상도 푸른색이라 더더욱.
비록 지금은 동절기라 썰렁하지만 여름에는 나름 감각적인 분위기를 뽐낼 법한 카바나와 선베드 디자인.
자쿠지는 수영장 끝에 위치해 있다.
수영장 한쪽에 마련된 풀 카페(Pool Cafe)는 동절기에 운영하지 않는 모습이다.
로비가 있는 23층에는 티 라운지(Tea Lounge)와 스카이바(Skybar)가 투숙객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중이다.
티 라운지는 그 이름처럼 영국식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장소다. 만다린 오리엔탈 때부터 있었다는데 하도 장사가 잘 되던 곳이라 월도프에서도 그대로 운영하는 중이다. 내가 체크인 하던 시간에도 몇 팀이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약이 권장된다고 하니 참고하는 게 좋겠다.
반면 스카이바는 기존에 운영하던 만다린 오리엔탈의 바를 리모델링하여 성업 중이다. 리모델링을 거친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름 괜찮은 바로 입소문이 났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23층의 시원시원한 뷰가 한 몫 하는듯. 라스베가스에선 고층에 위치한 바를 쉽게 찾을 수가 없어서 더더욱 희소성 있다.
시티 뷰 객실에서 실망감을 느꼈다면 티 라운지나 스카이바는 괜찮은 대안이다. 티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비로소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의 총지배인 도날드 보먼(Donald Bowman)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라스베이거스 개장 이후 18개월에서 2년 사이에 우리는 객실과 식음료 파트의 새단장을 마칠 계획이다. 이는 호텔의 주요한 변화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래, 언젠가는 이 호텔이 만다린 오리엔탈의 진한 흔적을 벗고 진정한 월도프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부티크 호텔 체인도 아니고 거대한 글로벌 체인인 힐튼이 어째서 리모델링 일정을 ‘개장 이후 1년 반~2년 사이’로 잡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세한 호텔의 내막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후진 객실 컨디션과 애매한 정체성이라면, 개장을 2년 늦추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모든 불편과 의문이 이 호텔 개장 5달만에 방문한 내 탓은 아닐 테니 말이다.
2020년 8월 이후에 이 호텔이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이전까지는 투숙을 꼭 재고해길 바란다. 현재는 가격과 객실 컨디션, 부대시설 그 어떤 것에도 장점이 없는 호텔이니.
[프고의 라스베이거스 출장기 모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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