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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어린이를 위한 남북한 말모이를 읽고

따옹! 호랑이가 나타났어요.

엄마는 이글타글 도망쳤어요.

이마에서 땀이 바질바질 솟았답니다.

허리에서 방울이 왈랑절랑 요란하게 흔들렸어요.

호랑이는 씨엉씨엉 엄마를 쫓아갔어요.

그 모습이 정말 와디디 했어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북한의 전래동화책에 나올 법한 내용입니다. 못 알아듣는 단어가 있을지언정 느낌은 다 통했고 의성어 의태어의 어감이 재미있어 실감 났습니다. 북한에서는 '어흥'을 '따옹'이라고 한다네요. 동화 속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글타글=열심히

바질바질=송골송골

왈랑절랑=딸랑딸랑

씨엉씨엉=기운차게 걷는 모습

와디디하다=굉장하다


작년에 4학년을 대상으로 도덕을 가르쳤습니다. 원래는 제 수업이 아니었지만 도덕 교과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중간에 제게 넘어오게 된 수업이었죠. 초등학교 도덕 수업에 빠질 수 없는 단원이 바로 '통일'단원입니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가장 걱정을 하시고 고민을 하시는 단원도 바로 통일 단원입니다. 아이들에게 통일과 북한이란 와닿지 않는 너무 먼 개념이기 때문이죠.


첫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 그걸 왜 해요?"
"자꾸 퍼주는 거 짜증나요."
"그냥 각자 잘 살면 안 되나요?"
"아 몰라요."



저마다 앞다퉈 얘기를 했지만 통일을 바라는 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많은 학생들에게 볼 수 있는 비슷한 반응일 것입니다. 교실 앞을 너르게 비우고 비사치기용 나무 도막을 곳곳에 세웠습니다. 제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이들의 눈빛은 궁금함으로 빛났습니다. 협동 게임이라고 했더니 아이들 눈이 반짝거리네요.


제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리고 한 친구가 나와 저에게 말로 설명을 합니다.

"앗 선생님 멈춰요 멈춰. 오른쪽으로 한 발...아니 너무 많이 가셨어요. 네 바로 거기요. 이제 크게 할 발 가세요."


내가 비석을 칠 것 같을 때마다 교실에서는 탄성 어린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렇게 시범을 보이면 서로 자기 팀이 하겠다고 난리가 나는 게 초등학교 교실입니다. 짝과 함께 협동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게임을 했더니 수업 초반 지루해하던 아이들의 눈에 생기가 돕니다. 게임 소감을 발표시켰더니 같이 협동해서 하니 목적지까지 잘 갔다는 답이 나온 것은 당연하겠죠.


5000년간 한민족이었던 남과 북이 헤어진 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남인 것처럼 각자 살아 가는게 맞냐고 물었더니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엄마 아빠와 헤어져 50년간 못 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아직 살아계시다는 말과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P1u7QGIsiEU

첨부한 이 영상을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이 영상을 보여줬더니 감수성 깊은 여학생이 울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따라 우는 여학생들과 슬프지만 울어서는 안 된다는 표정이 역력한 남학생들, 개중에는 니들 왜 우냐며 장난치는 남학생들도 있었지만 슬픔을 누르기 위한 한 방법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00가 너무 이쁘다고 칭찬을 한 후 나도 눈물을 훔쳤더니 많은 학생들이 마음 놓고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통일 수업은 순조 로우리라는 느낌도 가져 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북한말 퀴즈를 했습니다. 가락지 빵, 문지기 정도는 많이 들었는지 잘 맞추네요. 남학생들은 축구 얘기만 하면 눈이 반짝이는지라 '몰기'거 뭔지 '긴 연락 주기'가 뭔지 '벌차기'는 뭔지 퀴즈를 냈습니다. 맞추겠다는 의지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학생들이 귀여워 보입니다.


이렇게 말이 달라서야 너희들 통일되면 축구나 같이 하겠냐니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눈치가 보입니다. 통일의 길에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장벽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도 남북이 다르게 쓰는 많은 단어들이 나옵니다. 나무에 관한 장에서는 예쁜 말들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침엽수는 바늘잎나무, 활엽수는 넓은잎 나무, 상록수는 늘푸나무라고 부른다네요. 그렇다면 나이테는 뭐라고 부를까요? 힌트는 해마다 동그란 무늬가 돌돌돌 생기는 나이테를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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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돌이라고 부른답니다.

해돌이... 참 예쁜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독립을 하지 못했고 독립 이후에도 열강들의 틈에서 눈치만 보다 이렇게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한은 친일파 척결은커녕 그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나라를 좌지우지했습니다. 이념의 차이로 갈라서게 되었지만 북한에게 배울 점은 친일파 청산과 우리말 지키기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는 벚꽃이 없다고 해요. 벚꽃이 일본의 국화이기 때문에 일제의 잔재를 뿌리 뽑는다면 모두 없애버렸다네요. 일제가 남긴 문화유산은 물론이거니와 의식과 관념까지도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더불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죠.


외국어, 외래어 안 쓰기 놀이를 했더니 이내 탈락자가 속출합니다. 버스를 어떻게 우리말로 하냐며 투덜대는 아이들을 보며 세종대왕님이 살아 돌아오신다면 알아듣는 단어가 몇 개냐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말 지키기에 노력했던 북한의 태도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이유 없이 북을 적대시하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도 있지만 교사로서의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너희들이 컸을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 여행도 할 수 있을 거라며 부러워했는데 진심입니다. 국력 강화, 국방비 절약, 노동력 확보 등을 위한 통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에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마음의 통일 먼저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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