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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과 상상 Apr 25. 2020

잊지 않고 있어요.

remember 0416

어젯밤 6주기를 기리기 위해 또 한 컷을 남겨 본다.


벌써 6주기다.


기억력이 심각하게 나쁜 내가 2014년 4월 16일은 잊을 수가 없다. 사업을 하는 남편은 시간 관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평일이었던 그날 남편의 생일 겸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4월과 5월 보름 사이에 남편, 둘째, 셋째의 생일이 몰려 있고 5월은 가정의 달이기에 우린 양가로 바쁘게 쫓아다녀야 하는 처지였다. 바쁘고 힘들어지면 부인의 짜증 지수가 치솟는 걸 아는 남편인지라 미리 밑밥을 까는 데이트임을 모를 리 없었다.


가창에 있는 한 식당에 앉아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핸드폰을 뒤적였다.


"어???? 뭐야 이거?"

"왜왜? 무슨 일 있어?"

"수학여행 가는 배가 가라앉았대."

"뭐라고?"


그날의 우리 대화가 생생하다. 갑자기 밥맛이 없어졌고 뉴스란만 뒤적였다. 그리고 바로 '전원 구조'라는 뉴스가 떴다.


"에이, 그럼 그렇지. 그렇게 큰 배가 쉽게 가라앉나? 그리고 진도 앞바다면 구조도 쉬울 거고."

"그렇지. 밥이나 먹자!"

"오케이! 어휴... 어쨌든 다행이다. 식겁했어."

"맛있게 먹자앙~~~~."


이후의 뉴스를 지켜보면서 그날 그렇게 맛있게 밥을 먹은 것도 미안하고 무능한 정부에 분통이 터지고 수장된 아이들이 불쌍해서 한동안 아주 힘들었다. 대국민 우울증이란 말이 생길 정도였기에 비단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21세기에 이런 끔찍한 인재가 발생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꽃샘추위가 오면 뉴스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고 궂은비에 수중 시야 확보가 안된다는 소식에 또 맘을 졸였다.


한두해 전 큰딸의 수행평가 과제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게 있었다. 난 반색을 하며 그 선생님은 누구시며 어떻게 이런 과제를 낼 수 있었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애가 뭘 알겠냐만은 그분은 진보 성향의 분인지, 평소 용감한 성격이신지도 물어본 기억이 난다. 


처음엔 전 국민이 애도하고 추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보여 다시 한번 분노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는 교사 개인의 종교나 정치 성향을 어필할 수 없다. 중립을 지키며 가르쳐야 하는데 어느새 세월호 사건도 그런 부류로 넘어간 느낌을 받았다. 이 일이 왜 꺼내면 민감한 내용이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큰딸 국어 선생님의 과제는 참 반가웠다..


눈물이 차 오르고 목이 매여 책을 한 번에 다 읽을 수가 없었다.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꽉 끌어안으며 울기도 했다. 돈이 많았으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보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부모라 미안해하는 그들의 심정을 내가 감히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아이들에게도 종교적, 정치적, 사상적 자유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똑히 알려주고 싶었다.


추운 콘크리트 바닥에 촛불을 들고  앉아 있는 내 아이보니 또 눈물이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부끄럽지 않은 어른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같이 찬바람을 맞았다.


부인을 잃은 자는 홀아비, 남편은 잃은 자는 과부라 하지만 자식을 잃은 자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헤아릴 수 없는 단장의 슬픔에 감히 이름을 붙일 수 없어서다.


 그저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같이 아파해 주는 것, 꽃도 피지 못하고 져버린 아이들은 기억하는 것, 그래서 또다시 아이들에게 미안한 어른이 되지 않는 것, 이게 남은 자들의 과제가 아닐까.




잊지 않을게. 영원히
6년째 봐도 여전히 눈물 나는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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