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보수가 강세인 경상도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더했을 것이다. 가족과 뉴스를 볼 때면 항상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대학생 데모 장면이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동반되는 아버지의 감탄사가 있었다.
저 빨갱이 시끼들, 부모가 뼈 빠지게 일해서 대학 보내 놨더니 데모질이나 하고 있네. 나쁜 놈들.
비록 어렸을 때지만 스카이니 인 서울 탑텐이니 하는 좋은 대학에 다니는 똑똑한 언니 오빠들이 왜 나쁜 새끼들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진짜 화면 속으로 들어가 저 '나쁜 시끼'들을 다 때려잡을 것처럼 화를 내는 아버지께 감히 이유를 묻지는 못했다. 다만 대학 가면 꼭 학생운동을 하는 곳에 들어가서 진짜 그들이 나쁜 사람들인지 알아보리라 생각했을 뿐.
'콜라는 미제의 양물'이니 입에도 대지 말라는 강성 운동권 선배들을 만나며 나의 대학 새내기 시절은 '빨갱이' 집단에 대해 공부하는 시기였다. 학생회장 선배는 잘생기고 멋있고 인기도 많았다. 동연(교내 동아리 연합) 회장님은 끝내주는 말발로 데모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몸짓패 선배들은 다들 멋있고 의리 있었으며 후배 사랑도 대단했다. 부모님 등골이나 뻬먹으며 나쁜 짓이나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어느 봄날 -선배님께서 근로자의 날을 운운했으니 지금쯤이었나 보다-총학 선배께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니들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 알아?
노동자는 노동하는 사람이고 근로자는 근로하는 사람이요.
이걸 그냥 확... 또 다른 건?
노동자는 힘들게 일하는 느낌이 들고 근로자는 근면 성실하게 일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 맞다. 단어에서부터 우리는 노동자에 대한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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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알겠나? 너희들도 졸업을 하게 되면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시키는 거 하는 사람이 아닌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단결투쟁가'부르며 마친다! 구호 준비!
왜 항상 선배님들의 교육은 투쟁가로 끝났을까? 어쨌든 배움이 풍부했던(?) 대학 시절 덕분에 나는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의 날만 되면 그때 그 선배님처럼 내 아이들에게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를 묻곤 한다.
근로자와 노동자 모두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역사적인 의미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근로의 근(勤)은 부지런하다는 뜻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강제노역을 시킨 그들이 많이 사용했던 단어이다. 이후 유신정권에서 '새마을 운동'을 위시한 경제개발 정책을 위해 새 아침이 밝으면 너도 나도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경제개발을 위해 모든 걸 잊고 나를 바친 사람들을 근로자라고 명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운 공부는 기억이 안나도 노래는 기억하는 것처럼 이 글을 쓰는 지금, 노동가 가사가 입 안에 맴돈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그리고 근로자의 날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노동자로 잘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간 적도 많고 부당한 처우에 혼자 열 받고 만 적도 많지만 전태일의 분신 이후 이 나라에 개선된 점이 무엇이라도 있다면 그건 노동자들 덕분이리라. 그리고 지금 내가 만족하며 일 하는 것에도 나의 살아 움직이는 실천이 조금은 개입됐으리라 믿는다. 비록 그 시절 '투쟁'을 외치던 치기 어린 소녀는 이제 없고 세 아이 키우며 아등바등 사는 아줌마만 남았지만 나의 '응답하라 1998'은 내 삶에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며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천하는 노동자로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온라인 개학 기간 중 돌봄 교실에 오는 친구들은 두 명이다. 근로자의 날이라며 오늘은 도시락이 제공되었다. 알아서 싸와서 해결해야 했는데 소소한 기쁨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