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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Feb 01. 2023

예약하기 힘든 종합병원

엄마 병원 예약하기

민화수업이 있는 날이다. 계속되는 딸아이의 늦잠으로 오전이 너무나 바쁘다.

서둘러 준비해 겨우겨우 9시 50분에 등원을 시켰다.

그리고 속도를 내어 민화수업에 갔다.


10시 5분.

부랴부랴 짐을 풀고 손을 녹였다.

지난주는 설날로 인해 일주일 건너뛰고 2주 만에 있는 수업이었다.

얼마나 기다리던 수업인데 지각이라니.     


그림을 펼치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께서는 8명의 제자들을 한 명 한 명 돌아보며 가르치기 때문에 좀 기다림이 필요하다.

세 시간의 민화 수업이 순식간에 끝이났다. 


오후 1시.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에서 민화가방을 정리하고 있으니 밖에서 냐옹냐옹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밖을 내다보니 매일 밥을 먹으러 오는 녀석이다. 오늘은 왜 이리 늦었냐는 듯 다그치듯 냐옹거린다. 

거기에 오늘은 또 다른 녀석도 함께 왔다.

어쩔 수 없이 밥을 두 그릇 준비했다.  

   

이 두 녀석들만 배고픈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밥도 못 먹고 1시까지 수업을 해서인지 허기진 상태였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언니가 나왔고 커피 한잔 타서 밥 먹으러 오라고 한다.

언니는 원두커피 밖에 없고, 나의 작업실엔 믹스커피 밖에 없다.

확실한 건 믹스커피와 원두커피는 하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     

절대 원두커피는 믹스커피를 대신할 수 없다.   

  

믹스커피를 한잔 타서 냉큼 언니네 집으로 들어갔다.

김 굽는 냄새가 집안 전체에 퍼져있었다.

나는 허기진 배를 구운 김과 양념간장으로 연거푸 몇 쌈 먹었다.


아. 이제 살 것 같았다.     

원두를 내려놓은 언니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며 원두커피 한잔을 들고 나의 작업실로 왔다.

추웠다. 난로를 켜고 작업을 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내일을 엄마와 병원에 가는 날이라 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병원 예약이 우선이기에 병원에 전화를 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믹스커피를 한잔 타서 짐을 챙겼다.

차에 시동을 걸고, 커피를 마시며 병원에 전화를 했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 그림책 10권을 반납하고 10권을 빌렸다.

주차장에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전화를 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핫쵸코를 한잔 태워 먹으며 다시 전화를 했다.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어렵게 진료예약을 하고 나서야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야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자 시계를 보니 딸아이 하원시간이다.

아휴 쉴 수 없는 인생.   

  

딸아이를 픽업해 주차장에서 킥보드를 탔다.

오늘은 혼자가 아닌 옆라인 4살짜리 동생과 함께여서 재미있게 킥보드를 탈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어제 선물 받은 장난감으로 소꿉놀이를 했다.     

나는 홈트를 한 시간가량 했다.

아이의 저녁밥을 챙겨주고, 그림책을 읽어주니 벌써 자야 하는 시간이다.

딸아이는 늘 그렇듯 오늘도 아쉬워한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그대로 놔두면 내일 곤란한 일이 생긴다. 


병원예약이 10시 30분이기 때문에 무조건 9시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딸아이를 일찍 재워야 한다.

10시 전에 겨우겨우 잠든 딸아이를 두고 거실에 나왔다.


남편이 오늘도 늦었다.     

12시가 다 되어서 온 남편에게 비빔밥과 남은 떡국을 주었다.

술을 한잔하고 자고 싶어 하는 남편이었지만 집에 술이 없었다.

아쉬워하며 커피로 대신한다.     


요즘 매일 이 시간에 퇴근하는 남편이 걱정이지만.

나는 당장 내일이 더 걱정이다.

제발 진료와 사진 찍기 모두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리고 수술날짜도 최대한 빨리 잡혀야 할 텐데.


딸아이 픽업할 시간과 엄마의 병원이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생긴다.     

무엇보다 병원업무가 늦어지면 딸아이를 대신 픽업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 걱정보다 딸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조금 씁쓸한 마음이 생기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엄마의 수술은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코로나로 병원 다니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계속 미루다 이제야 가는 것인데, 지금은 딸아이가 걸린다.


종합병원은 일처리가 더디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내일을 위해 나 또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내일의 희망적인 하루를 기대하면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들고자 한다.


옆에서 놀아달라고 하는 짜장이와 이제 조금 기운차린 미미를 뒤로하고, 나는 내일을 생각하며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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