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 만드는 결혼
남편이 시어머니와의 연락을 끊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후에도, 우리에게 곧바로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외부의 공격이 재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우리는 시부모님을 극도로 경계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 불안했던 경계의 시간 속에서, 남편의 보호막은 더욱 단단해졌고 나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제야 '사랑이 조건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나의 오랜 믿음'이 어떻게 무너졌었는지 돌아보았다. 가족에게는 신뢰 100%의 사랑을 받았지만, 내 파릇한 20대 청춘의 연애는 달랐다. 나조차도 세상이 따지는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를 폄하하며 획일적인 기준에 맞춰 작아지는 쪽에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를 무너뜨린 것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 사회적 조건을 선택함으로써 준 냉혹한 경험이었다.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오랫동안 만났던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이었다. 그는 소위 '명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고, 그의 집안은 '안정적인 계층'에 속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처음부터 나 같은 배경과는 신분 차이가 난다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가장 화가 났던 포인트는 나를 사랑해 주는 우리 가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함부로 취급하는 것을 보니, 마치 나를 키워낸 가족 전체의 사랑과 명예가 모욕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만은 온전히 나를 사랑해 준다고 믿었고 한동안 만남을 이어갔다. 처음엔 이해하는 척하던 그였지만, 결국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워 나를 떠났다. 심지어 그놈은 그 여자가 자기가 성별을 떠나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상이라며 나에게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라는 질문까지 했다. 미친놈인 줄 알았다.
그의 양다리는 달콤한 안정을 놓치지 않으려는 비겁한 자기 방어였다. 마음이 없었으면 진작 이별을 말해줄 것이지. 하지만 그는 그럴 용기조차 없이, 우리에게 좋았던 시간마저 오염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그의 선택을 두고 '현명한 판단'이라고 박수 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정은, 나와의 관계를 깔끔하게 끝낼 용기조차 없이 다른 사람을 만난 비열한 회피였을 뿐이다. 자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마저 저버린 비도덕적인 선택이었다.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결국 내 쪽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그를 향한 분노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다.
그 후, 낮았던 나의 자존감은 더 바닥으로 치달았다. 나는 "하긴 누가 나 같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랑 만나려고 하겠어"라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고, 나 자신을 더욱 세상이 정한 획일적인 기준에 억지로 욱여넣으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가족들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를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는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노력과 함께였다. 그런 마음 상태에 머물러 있던 나에게 다가와준 남편은, 인생 처음으로 내가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 사람이었다. 그는 나의 '순종적이지 못한 기질'이나 '남들보다 부족한 스펙' 같은 것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가치야"라고 말하며 자율성을 지켜주었다.
남편을 만난 후 몇 년 동안 마음속에 남아있던 전 남자 친구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싫은 티를 내지 않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음속에 더 이상 쏟아낼 말이 없을 정도로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는 정말 씻은 듯이 지워졌다. 더 이상의 분노의 감정이 남지 않도록 태워버리고 언제부터인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던 이유를 떠올려봤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온전히 마주하는 대신, 나는 자기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다. 좋았던 기억까지 모조리 외면하고, 마지막의 최악의 선택에만 집중해서 그 관계를 빨리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 결과 분노와 억울함은 해소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 꽁꽁 묶인 오랜 억압과 고립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문득문득 남편에게 "당신은 왜 나를 좋아해 주냐"라고 묻곤 했다. 그는 심각해지지 않고 "너? 귀여우니까."라는 말로 웃어넘기며, "그러니까 이 오빠한테 잘해라"라고 말하며 무거운 팔로 내 목을 감싸 안는다.
남편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고, 내가 원하는 일들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삶의 중요한 선택에서 오직 나의 갈망대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는 내가 가진 모든 불안함과 부족함까지도 하나의 일부로 인정해 주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이 짓눌러 오던 모든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됨을 느꼈다.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서로가 정말 잘 만났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나는 이 말을 가장 빛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우리의 연대는 세상의 기준으로부터 나를 지켜줬고, 나의 존재가 최고로 귀한 가치임을 알게 해 주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던 내가 온기와 다정함으로 가족들을 대하기 시작했다는 변화야말로 우리가 함께 이룬 가장 단단하고 의미 있는 성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