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2년 대한민국 상반기 최고의 이슈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거대한 이슈가 드디어 끝이 났다. 선거의 결과 여부에 따라 누군가는 환호를 외치며 감격의 순간을 마주했을 거다. 다른 누군가는 좌절과 고통의, 그 끔찍한 순간을 조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중이던 우리 가족은 사전 출구 조사 결과가 공개되는 7시 30분이 가까워 오자 허둥지둥 식사를 마치고 언제나 그랬듯 텔레비전 앞에 재빨리 모였다. 그리고 희비가 엇갈리는 그 순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다. 우리 가족은 총 네 번의 선거를 치렀기에 가슴 떨리는 ‘그 순간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빠는 시장님이셨다. 100만 시민이 모여 사는 도시를 아름답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8년을 그 ‘도시의 아버지’로 일하셨다. 시장으로서 아빠의 가장 큰 목표는 본인으로 하여금 도시를 그 어느 곳보다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빠는 주말도, 휴일도, 연휴도 반납하며 고군분투하셨다. 아빠는 많은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시정을 힘차게 이끌어 가셨다. 하지만 시민들의 엄청난 질타를 받으며 때로는 대치상황에 놓여 길고 긴 협상의 시간을 갖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적에 두고 나 홀로 큰 싸움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 시간이 참 고되셨을 것 같다.
아빠가 시장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나 역시 정치인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는 이미 정치계에 몸담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모태 정치인 자녀로서 여러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8년이라는 시간은 모태 정치인 자녀로서의 삶을 그야말로 압축하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당선이 되셨던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까지, 어쩌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청소년기, 청년기를 ‘이름 있는 정치인의 자녀’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아직 자아를 확고히 정립하지 못한 시기에 이 같은 삶을 겪다 보니 그때는 소위 멘붕 상황을 겪기도 했고, 언제나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기만 하던 아빠가 참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빠 덕분에 행복하고 감사했던 기억들이 10,000배쯤은 더 많다.
올해로 아빠가 퇴임하신 지 12년이 됐다. 솔메이트와 같은 절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 아빠가 현직에 계실 때도, 퇴임 후에도, 우연히 알게 되지 않는 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빠가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굳이 말을 할 필요성도 없을뿐더러 이야기를 해봤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내 경험상 뻔한 질투와 시기 혹은 도를 넘어선 과잉 친절과 아첨일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전히 주위 분들에게 시장님으로 불리신다. 하지만 12년 전부터 그래 왔고 지금도 여전히 여름에는 마당에서 싱싱하게 길러낸 상추와 가지, 고추를 따고, 겨울에는 털모자를 쓰고 집 앞의 눈을 치우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다. 이 말인즉슨 예전과 같은 권력과 크나 큰 영향력은 이제 아빠에게 없다는 거다.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 와서 이런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고, 아빠는 이제 권력의 테두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나를 시기해서 마음을 불편해할 사람이 이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시장님의 고명딸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도, 화려한 파티에 VVIP로 참석하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추억들을 남겨준 8년간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회고해보고 싶었다.
‘남 주기 위해 공부하는 나’의 성격상 정치에 이제 막 입문하고자 하는 예비 정치인과 그의 가족들에게 정치인과 그 가족들의 삶을 가감 없이 이야기해주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기도 했다. 정치인의 자녀와 가족으로 살아가는 꾸밈없는 사적인 이야기는 책으로도, 영상으로도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으니 말이다. 최근 들어 많이 제기되는 정치인 자녀의 교육과 도덕성 문제들이 국민들의 혈압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들 모두가 다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 모두를 버리고 오직 국민과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도 싶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서 나는 어떠한 정치색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아빠의 실명을 거론하지도 않을 것이다. 글에서 드러나는 키워드들로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는 그저 지난 과거의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글로 정리하는 기록용으로, 앞으로의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인의 자녀로 살아간다면 이런 일도 있구나, 저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며 정치 성향을 떠나 단순히 재미를 느끼는 수단이 되기를, 예비 정치인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위한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