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물 한 컵을 떠오는 것이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넣어둔 거대한 통을 꺼낸다. 고함량 비타민 B군이 들어있다는 그 약은 이제 내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과도 같다. 냄새는 고약하고 알약은 목구멍을 넘기기 힘들 만큼 크지만, 이것을 삼키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시작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직장인에게 비타민은 이제 기호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부품이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에 강제로 전류를 흘려보내는 급속 충전기와 같다.
회사는 직원의 열정을 원하지만, 그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커피와 비타민으로 억지로 끌어올린 가짜 활력을 회사에 바친다. 몸은 쉬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데, 뇌는 비타민의 힘을 빌려 "조금만 더"를 외친다. 이러한 인위적인 활기 뒤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주말 내내 잠만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는 주중에 빌려 쓴 에너지가 이자로 돌아온 결과다. 우리는 비타민을 먹으며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한계를 조금씩 뒤로 미루고 있을 뿐이다.
부장님의 책상 위에는 정체 모를 한약 박스가 있고, 신입 사원의 책상 위에는 트렌디한 젤리 형태의 비타민이 있다. 연차가 쌓일수록 약통의 개수는 늘어나고 성분은 더 독해진다. 책상 위 영양제 구성만 봐도 그 사람의 직급과 스트레스 지수를 짐작할 수 있다. 간 수치를 걱정하는 밀크씨슬과 눈의 침침함을 호소하는 루테인이 섞여 있는 대리의 책상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다. 우리는 서로의 약통을 보며 묻지 않아도 서로의 고단함을 읽어낸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목소리에 힘이 없고 눈동자가 흐릿한 날이 있다. 성취감이 거세된 노동,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보고서 작성은 마음의 빈혈을 일으킨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비타민이 아니다. 내 업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확신, 혹은 오늘 하루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는 자기 위안이다. 마음의 영양실조는 약국에서 고칠 수 없다. 우리가 진짜 챙겨야 할 것은 혈중 비타민 농도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자존감의 농도다.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회사의 보상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접하는 방식이다. 점심시간 짧은 산책을 통해 비타민 D를 직접 합성하고, 퇴근 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 그 자체가 나를 위한 천연 비타민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라는 엔진이 타버리지 않도록 적절한 윤활유를 쳐주는 행위다. 비타민 한 알을 삼키는 그 짧은 순간만이라도, 남의 일을 하는 '직원'이 아닌 소중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