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의 침묵은 금인가 믹스커피인가

by 숫자의언어

좁은 문 사이로 흐르는 기묘한 공기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 혹은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한 탕비실은 회사의 온도계와 같다. 탕비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경쾌하다면 그날의 팀 분위기는 맑음이고,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면 그날은 폭풍우가 예보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좁은 공간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상사의 눈치와 업무의 압박으로부터 아주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비무장지대'이기 때문이다.

믹스커피 한 봉지에 담긴 위로의 함량

노란색 포장지의 믹스커피를 뜯는 소리는 회사원들에게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종이컵에 가루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 발생하는 그 특유의 달콤한 향기는 긴장을 완화시킨다. 누군가는 건강을 생각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감 기한에 쫓기거나 상사에게 호된 질책을 들은 뒤에는 결국 믹스커피의 설탕 맛이 간절해진다. 그 한 잔의 당분은 뇌를 깨우는 도구가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을 잠시나마 지탱해 주는 아주 저렴하고도 확실한 처방전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타인의 온도

탕비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료의 뒷모습은 평소 책상 앞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평소 빈틈없어 보이던 과장님이 정수기 물이 채워지길 기다리며 멍하니 벽을 보고 있는 모습이나, 늘 밝던 신입사원이 구석에서 휴대폰을 만지며 입술을 깨무는 장면을 목격할 때 우리는 동질감을 느낀다. 굳이 "힘들지?"라고 묻지 않아도 된다. 냉장고 안의 이름표 붙은 우유나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처럼, 탕비실에는 주인 잃은 고단함이 여기저기 널려 있기 때문이다.

소문의 발원지이자 종착역으로서의 기능

정보의 비대칭성은 권력에서 오지만, 정보의 유통은 탕비실에서 일어난다. "이번 인사 발령이 어떻게 된다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은 커피 머신이 원두를 가는 소음 속에서 은밀하게 완성된다. 하지만 탕비실의 대화는 양날의 검이다. 타인의 불행이 안주가 되기도 하고, 서로의 고충을 나누며 전우애를 다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의 대화가 사무실 책상 위의 공식적인 메일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날것의 감정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문을 열고 전장으로 나가는 시간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순간, 휴식은 끝난다. 탕비실 거울에 비친 흐트러진 내 모습을 한 번 가다듬고 나면 다시 사회적 자아를 장착해야 할 시간이다. 탕비실은 정거장 같은 곳이다. 잠시 멈춰 서서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달릴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그 좁은 공간에서 믹스커피 한 잔의 온기에 기대어 하루를 버텨낼 것이다. 탕비실 문을 닫고 나가는 등 뒤로 다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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