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함과 미련함 그 사이 어디쯤의 야근

by 숫자의언어

열심히 한다는 착각에 대하여

신입 사원 시절, 야근은 훈장이었다. 남들보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애사심의 증거이자 성실함의 척도라고 믿었다. 선배들이 퇴근할 때까지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들, 딱히 급한 일이 없어도 모니터를 켜두고 무언가 하는 척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깨닫게 된다. 야근은 열정의 증거가 아니라 효율의 부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물론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있지만, 습관적인 야근은 결국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된다는 것을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려야 한다.

업무의 밀도와 시간의 상관관계

우리는 종종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를 '얼마나 일을 잘했는가'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업무 성과는 투입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1시간이 멍하니 앉아 있는 4시간보다 훨씬 가치 있다. 야근이 잦아질수록 낮 시간의 업무 집중도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어차피 늦게까지 할 텐데'라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유능한 사람은 업무 시간 내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제시간에 문을 나서는 사람이다.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야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 필요하다.

거절하지 못한 부탁이 쌓아 올린 탑

야근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거절의 부재'다.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떠안은 업무들, 혹은 무리한 일정을 그대로 수용한 대가는 오롯이 나의 밤 시간으로 치러진다. 착한 동료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야근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회사는 성과로 말하는 곳이지, 친절함으로 버티는 곳이 아니다. 적절한 선을 긋고 내 업무의 우선순위를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야근을 줄이고 나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근은 영혼을 메마르게 한다. 취미 생활도, 친구와의 만남도, 가족과의 저녁 식사도 사라진 삶에는 오직 업무뿐이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생기 잃은 눈빛과 푸석해진 피부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미 위험 신호다.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수많은 야근의 밤들이 차곡차곡 쌓여 폭발하는 것이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지만, 내가 무너지면 나의 세계는 멈춘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야근하는 밤에는 자꾸 잊게 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선택할 용기

이제는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와 작별해야 한다. 퇴근 후의 시간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하고 '인간 000'으로서의 자아를 찾는 시간이다. 정시에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 것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동료들의 눈초리나 상사의 미묘한 표정을 견뎌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용기가 반복될 때 비로소 나의 저녁은 살아난다. 야근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때, 비로소 진정한 직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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