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이름 대신 직함으로 불리고, 생각보다 말투가 먼저 나가고,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계산하게 된 순간은. 분명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의 나는 지금과 조금 달랐다. 그때의 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 아직 ‘회사 사람’은 아니었다.
입사 초기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조직의 규칙, 보이지 않는 서열,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들. 그때는 이해하지 못해도 질문했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면 속으로라도 불편해했다. 퇴근 후에는 회사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고, 내 하루의 주인공은 여전히 ‘나’였다. 회사는 그저 내가 하루 중 일정 시간을 머무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회의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보다 “이건 문제 안 될까?”를 먼저 떠올렸다. 상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 앞에서도 감정 대신 논리를 찾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사람’에서 ‘회사 사람’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던 순간은.
회사 사람은 빠르다.
판단이 빠르고, 눈치가 빠르며, 상황 파악이 빠르다. 대신 느리게 생각하는 능력은 줄어든다. 하고 싶은 말은 줄고, 해야 할 말만 남는다. 감정은 효율적으로 정리되고, 관계는 업무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과정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혹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변해간다.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 조용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예전의 나는 사라지고 없다. 퇴근 후에도 메일 알림에 신경 쓰고, 주말에도 월요일을 계산한다. 일에 익숙해질수록 삶은 낯설어진다. 회사에서의 나는 점점 능숙해지는데, 회사 밖의 나는 점점 서툴러진다.
‘회사 사람’이 되었다는 건 어쩌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책임을 알고, 말을 고르고,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키는 데 서툴러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참게 되었고, 그 참음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멈춰 서서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잘 적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익숙해진 걸까.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된 건지, 회사에 맞춰진 사람이 된 건지. 이 질문을 잊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회사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회사에 다니는 건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회사가 나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다. 퇴근 후의 나, 주말의 나,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 나의 시간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 속의 나도 버틸 수 있다.
나는 이미 회사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회사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차이가, 직장생활을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힘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