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잘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by 숫자의언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글을 잘 쓰면 보고서도 잘 쓸 거라고. 학창 시절 리포트를 잘 쓰던 기억, 문장을 다듬는 데 나름 자신이 있었던 경험 때문에 보고서 역시 비슷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보고서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수없이 고쳐 쓴 문서 파일을 통해 깨달았다.


회사의 보고서는 글이 아니라 결과물이다


보고서는 읽기 좋은 글이기보다 업무의 결과물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설득하거나 감동시키기 위한 글이 아니라, 결정과 판단을 돕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래서 문장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핵심이 흐릿하면 좋은 보고서가 되지 못한다. 상사는 보고서를 읽으며 글맛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이 일이 왜 중요한지,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이 있는지를 먼저 본다.


보고서에는 주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회사 보고서를 처음 쓸 때 가장 헷갈렸던 점은 문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주어를 쓰고 설명을 덧붙였지만, 피드백은 늘 비슷했다. 쓸데없이 길다,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 거냐. 보고서에서는 나라는 주어가 필요 없다. 감정도 필요 없다. 오직 사실과 결론, 그리고 선택지가 있을 뿐이다. 글쓰기에서 배운 친절함은 여기서 오히려 방해가 된다.


잘 쓴 보고서는 질문에 바로 답한다


상사가 보고서를 여는 순간 머릿속에는 이미 질문이 있다. 이 안건을 진행해야 하는가, 비용은 얼마인가, 리스크는 무엇인가. 보고서가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논리적인 글도 소용없다. 그래서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질문을 정리한다. 이 문서를 읽는 사람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보고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합의의 결과다


보고서를 완성하는 과정은 혼자 글을 쓰는 일이 아니다. 관련 부서의 의견, 상사의 성향, 조직의 분위기가 모두 반영된다. 그래서 보고서에는 개인의 문체보다 회사의 언어가 묻어난다.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은 문장을 다듬기보다, 미리 조율하고 합의하는 데 능하다. 보고서가 상사에게 전달되기 전, 이미 절반은 완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보고서는 배워야 한다


글쓰기는 타고난 감각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 보고서는 회사마다 다르고, 상사마다 다르다. 잘 쓴 보고서를 많이 보고, 많이 고쳐보는 수밖에 없다. 보고서 잘 쓰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서의 의사결정 방식을 이해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보고서는 조금 덜 두려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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