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알람을 끄며 드는 생각은 비슷하다. “오늘도 출근이네.” 몸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세수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기고, 지하철이나 버스에 오른다. 회사에 도착하면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누가 보면 성실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퇴근한 지 오래다. 아니, 애초에 출근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시간이 쌓인다고 경험이 자동으로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편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상태다. 익숙함이 안정이 아니라 정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월급은 매달 정확히 들어온다. 통장은 숫자로 나를 위로한다. “그래도 버티고 있잖아.”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하지만 마음은 그 숫자만큼 차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숫자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이 돈을 받기 위해 내가 포기한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었던 의견, 해보고 싶었던 일, 나답게 일하고 싶다는 욕심 같은 것들.
회사에서는 성과를 중요하게 말하지만, 정작 개인의 감정에는 무심하다. 힘들다는 말은 예민함이 되고, 고민은 능력 부족처럼 취급된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은 마음을 숨긴다. 웃으며 일하고, 괜찮은 척한다. 그러다 퇴근길에 갑자기 이유 없는 피로가 몰려온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지친다. 마음이 계속 출근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험 잘 보는 법은 배웠지만, 조직 안에서 상처받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평가받는 위치에 오래 머무는 법,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관리하는 법, 그리고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 다니며 가장 먼저 잃는 건 열정보다도 ‘나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퇴근 중이라는 건 도망치고 싶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참고 버텼다는 신호에 가깝다. 더 이상 무언가를 밀어 넣을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출근 전부터 이미 지쳐버린다. 이 상태에서 필요한 건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나는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가.”
모든 사람이 회사를 떠날 수는 없다. 당장 월급이 필요하고, 책임져야 할 삶이 있다. 하지만 마음까지 완전히 출근시키지 않아도 된다. 일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에서의 평가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회사 밖의 시간을 더 소중히 써야 한다. 작더라도 나를 회복시키는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
월급은 받는데 마음은 계속 퇴근 중인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게으른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성실했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먼저 퇴근하는 건 나를 지키려는 마지막 방어일 수 있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언젠가 다시, 마음도 함께 출근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