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이라는 말 뒤에 숨은 기대
회사에서 “이번 회식은 자율 참석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순간 안도감이 든다. 가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생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정말 안 가도 되는지, 안 갔을 때 불이익은 없는지, 참석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괜찮을지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된다. 자율이라는 말은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책임까지 개인에게 넘기는 표현이 되곤 한다. 선택의 자유보다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남는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의 하루
회식 당일, 불참을 선택한 사람은 퇴근 후에도 편하지 않다. 혹시 지금 누군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지, 다음 날 분위기가 어색해지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인다. 단체 채팅방에 올라오는 사진 한 장에도 마음이 복잡해진다. 웃고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은 아닐까 자책하게 된다. 회식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퇴근 이후의 시간이 온전히 개인의 것이 되지 않는다.
참석한 사람도 자유롭지 않다
자율 참석은 참석한 사람에게도 부담을 준다. 안 가도 되는 자리라면 굳이 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사나 팀원 눈에 띄기 위해 나왔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다. 분위기를 띄워야 할 것 같고, 빠지기에도 애매하다. 자율이라는 말은 회식의 무게를 줄이지 못한 채 참석 여부에 대한 각자의 사연만 늘려놓는다. 그 결과 회식 자리는 편안함보다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이 된다.
자율 참석이 조직문화에 남기는 흔적
이 표현이 반복될수록 회사의 조직문화는 더 불분명해진다. 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기준이 없으니 눈치가 기준이 된다. 누가 갔고 누가 안 갔는지가 기억되고, 그 기록은 평가와 관계에 은근히 영향을 미친다. 자율 참석이라는 말은 갈등을 피하기 위한 중립적인 표현 같지만, 오히려 구성원 각자에게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남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솔직함
회식이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반대로 굳이 모일 이유가 없다면 과감히 없애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자율이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덮으려 할수록 구성원들은 더 많은 눈치를 보게 된다. 진짜 배려는 선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회식 문화도 마찬가지다. 솔직한 기준과 일관된 태도가 있을 때, 회식은 무서운 자리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