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사라진 풍경
언젠가부터 회식이 거의 없는 회사가 늘어났다. 술을 강요하지 않는 문화,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분위기는 분명 반가운 변화다. 달력에서 회식 일정이 사라지고, 저녁이 온전히 개인의 시간이 되었을 때 많은 직장인들은 이게 바로 이상적인 회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식이 사라진 자리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로를 모르는 동료들
회식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사람 사이의 거리였다. 업무 이야기 외에는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임에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간다. 성격, 말투, 가치관을 알 기회가 없으니 작은 오해도 쉽게 쌓인다. 메신저의 짧은 문장 하나에 기분이 상하고, 회의에서 나온 말이 의도보다 날카롭게 받아들여진다. 친해질 계기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공백으로 남는다.
업무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회식이 있을 때는 공식적인 회의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곤 했다. 일에 대한 불만, 프로세스의 문제, 개인적인 고민까지 술잔을 사이에 두고 흘러나왔다. 회식이 사라지자 이런 이야기들은 갈 곳을 잃었다. 회의실에서는 여전히 형식적인 말만 오가고, 메신저에서는 오해가 생기기 쉽다. 소통을 줄이기 위해 회식을 없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소통의 통로 하나가 함께 사라진 셈이다.
팀워크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팀워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 웃고, 가볍게 이야기하고,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여야 생긴다. 회식은 그 역할을 하던 몇 안 되는 장치였다. 물론 모든 회식이 팀워크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사라지고 나니 팀은 기능적으로만 연결된 집단이 되기 쉽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부터 따지고, 여유 있는 이해보다는 거리 두기가 먼저 나온다.
신입과 경력의 간극
회식이 없는 문화에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쪽은 신입이나 이직자다. 업무 외적으로 관계를 만들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조직에 스며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누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리고, 질문 하나를 하기까지도 망설이게 된다. 예전에는 회식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되던 어색함이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견뎌야 할 부담이 된다.
회식의 대안이 필요하다
회식이 사라졌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문제는 회식을 없애면서 아무 대안도 만들지 않았을 때다. 가벼운 점심 식사, 짧은 티타임, 프로젝트 종료 후의 소규모 모임처럼 부담 없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연결이다. 회식 문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조건 회식을 없애는 것일 필요는 없다.
없애는 것보다 바꾸는 것
회식이 사라진 회사는 분명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가 항상 건강한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조직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고,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온도가 필요하다. 회식은 그 온도를 유지하던 하나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이제 필요한 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문화에 맞는 새로운 연결 방식이다. 회식을 없앴다면,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다음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