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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u May 20. 2020

(6) 프랑크푸르트 랜덤 댄스

직장인 늦깎이 유학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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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랜덤 댄스


한국은 여러모로 외국인들에게 흥미로운 곳이다. 아직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노스코리아. 로켓보이가 주무르는 이 미지의 세계는 외국인들에게 관심을 끄는 묘한 재주가 있다. 시대와 동떨어진 독재자 가문이 지배하는 우스꽝스러운 나라가 미국과 아웅다웅하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북한과 여행으로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이지만 서양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이 칠하는 동료들도 가끔 북한 여행을 하는 게 어떤지 나에게 묻곤 한다. 동아시아를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북한을 방문할지 실제로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고민이 되지 않더라도 나와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만한 가장 적당히 자극적인 소재는 단연 북한이다.


북한은 이처럼 오래전부터 지속적인 관심 대상이 되어 왔던 반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여러 인접국가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의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각종 전자제품과 자동차, 배도 한국 기업 제품의 수준은 다른 나라의 그것들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전통 제조 산업의 성장도 한 국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단면이지만 문화 산업의 성장은 한 국가가 얼마나 깊이 있는 정신적 성장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및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바람에 문화 산업의 성장이 눈에 띄게 두드러 진다. 하지만 한류라는 단어가 생긴 지 꽤 오랜 시간이 되었고 보이밴드 BTS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꿈꾸셨던 문화강국*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점점 보이고 있다.


문화 산업의 성장은 한 국가가 얼마나 깊이 있는 정신적 성장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

내가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시내 괴테 광장에서는 토요일마다 (매주 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요일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 청소년들이 광장에 모여 케이팝을 랜덤으로 플레잉하며 춤을 추는 것인데 결코 작은 모임이 아니어서 때로는 100명 가까이 모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친구들이 노는 방식은 이렇다. 모임의 주최자가 되는 사람이 노래의 주요 부분을 잘 편집하여 메들리 형식으로 음악을 튼다. 이때 그 노래의 춤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가 둘러싼 가운데 공간으로 나와 춤을 춘다. BTS같이 인기가 많은 그룹의 노래가 나오면 그 모임에 나온 거의 모두가 우르르 몰려나와 춤을 추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그룹의 노래가 나오면 유독 춤과 음악을 많이 외운 친구의 독무대가 되기도 한다. 가끔 x세대의 대표 주자인 현진영 노래까지 들리기도 하는데 이 모임에 나온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노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이 친구들이 춤을 추고 있으면 괜히 멈춰 서서 구경을 하게 된다. 춤을 추며 한껏 멋에 취한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이 음악의 종주국 출신이라는 괜한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


출처 : https://www.fr.de/frankfurt/cool-tanzen-k-pop-stars-12936716.html


한국에 가보지 않은 비율이 더 많을 것 같은 이 어린 친구들에게 한국은 세련된 음악이 흐르는 멋이 넘치는 사람들의 나라로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대한 완전히 정확한 인식은 아닐지 몰라도 잘못된 인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은 점점 외국인들에게 문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외국인의 인식과 지나칠 정도로 대조적이다. 나는 북한에 대한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외국인 친구들에게서 그들은 마치 북한은 사람의 삶이 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의 문화가 배제된 채 그저 하나의 이상한 집단으로써만 인식한다고 느껴진다. 문화가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도 그의 강연과 인터뷰를 정리한 “보다"라는 책에서 비슷한 내용의 말을 언급한 적이 있다.

북한은 사람의 삶이 없는 곳일까



오르한 파묵이 이라크의 작가였다면 미국은 이라크를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의 풍경을 소설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터키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삶을 그려냈어요. 이라크는 석유는 갖고 있지만 터키처럼 세계적인 레벨의 작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 나라에는 마치 인간이 살고 있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요. 사담 후세인이 지배하던 악의 제국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 삶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반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작가가 있는 남미의 경우는 그 반대예요. 거기 사람들은 괜히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곳에선 마술적인 일이 일어나고, 유쾌하고 어딘가 신비롭고 이상한 사건들이 태연하게 일어날 것 같아요. 그렇게 친숙한 느낌을 주는 것이 책이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외국의 독자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새로운 일이죠.



문화 산업은 국방력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업일지도 모른다.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전달하지 않는 북한은 교류의 대상이 아닌 타격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다. 반면에 변방의 작은 나라였던 한국은 서서히 세계의 중심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변방의 나라도 아니었다는 작은 나라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근 현대에 접어들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 이전부터 대국을 옆에 두고 있었던 탓인지 이 큰 산업과 인구를 가지고도 우리는 스스로를 낮추다 못해 위축된 상태에서 자신의 크기도 가늠을 못하였다. 사실 5000만 규모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흔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독일뿐만이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 어린 친구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음악과 춤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고 전 세계인이 가장 공감한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큰 나라가 되었다. 전쟁을 겪은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이루어 낸 말도 안 되는 성장이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늦은 나이에 유학을 선택하였다. 나는 실제 한국의 변화를 경험하며 부딪히며 자랐고 대부분은 좌절하고 때로는 기뻐하며 얼룩덜룩한 30년의 삶을 그곳에서 살았다. 화려한 모습에 감춰진 이면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이면 안에서만 살기도 했으며 그곳을 깨고 나와 또 다른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지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초월적으로 떨어져서 한국을 다시금 바라보고 또 다른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험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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