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남성 01
동생의 잘못으로 집안의 경제가 박살이 나게 생겼습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저는 저희 가족 모두가 길바닥으로 쫓겨나 주저 앉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감은, 지금도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제 인생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나누라면, 저는 주저없이 이 사건 이전과 이후를 꼽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을까?’ 수 백번 복기(復棋)를 해 보아도 원인을 몰랐습니다. 게다가 이 건에 대응하는 동생과 어머니의 행태를 보면서, 저는 저만 미친 줄 알았습니다. 수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분양 받은 상가 건물-부실 자산 매각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허세 때문에 고급 스포츠카를 유지하려는 태도에 ‘우리 가족에게는 상식이라는 게 없나? 아니면 다를 정상인데 나만 미친 건가?’라는 생각에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재정 상황도, 동생과 어머니의 태도도 여전했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이 상황이 풀려 지나가리라는 실날 같은 희망은 품었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웠던 일은 파산이 아니라, 이 사건을 겪으며 배우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원인도 파악하지 못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것은 자명(自明)했습니다. 그때는 제 눈에 피눈물이 흐르고, 제 가족들이 모두 비참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비즈니스 관계로 아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제 얼굴에 드리어 있는 그늘을 읽었던 것일까요? 무슨 일이 있는 지 물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잘 알지도 모르는 분에게 집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혼자 안고 있었던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그분은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이 있었습니다. 35년 쯤에, 그 형이 20대 중반 나이에 도박으로 20억원을 날렸다고 했습니다. 1997년 대치동 은마 아파트 시세가 1.5억원이었습니다. 그때의 20억원은 지금의 200억원은 된다고 봅니다. 그 돈을 날렸을 때, 그 분 아버지는 “우리에게는 아직 집이 있고, 현금 1억원이 남아 있으니 괜찮다”라고 하셨답니다. 아버님이 긍정적이셨을까요? 아니요, 저는 그 분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무능했구나!, 아버지가 무기력하구나!, 아버지가 아무런 역할도 못했구나!, 우리집하고 똑같구나!’ 그분 아버지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됩니다. 20대 중반의 아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돈을 달라고 하니, 전 재산의 95%로 보증을 서 주었습니다. 또 그렇게 큰 보증을 서는데도 그 아들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확인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습니다. 아들이 하겠다니, 그냥 거의 모든 재산을 밀어넣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이 사달을 일으켰는데도, 아들에 대한 페널티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다리 몽둥이가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온 몸 뼈마디를 다 분질러 놓았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해 주신 그 분은 저보다도 더 심한 일을 겪으셨습니다.
이야기를 더해 가면서, 어머니는 절대로 아들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엇나가 불쌍해진 아들에게 어머니가 해 주는 일이라는 게, 잘해 주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분 어머니는, 세월이 지나 백수가 된 큰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다른 자녀들 몰래 대출을 받아 벤츠 자동차를 사 주었다고 합니다. 큰 형에게 벤츠가 그리도 필요했던 것일까요? 하물며 백수였는데도 말이지요.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몰래 대출까지 받아, 생활 자금도 아닌, 또 사업 자금도 아닌, 외제차를 사 주며 기뻐했을까요? 어이없게도, 이 사실-어머니의 기쁨만큼은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제 동생의 고급 스포츠카의 월부금을 대신 갚아주는 저희 어머니의 얼굴에는 행복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자식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해 줄 수 있다는 기쁨이 진정으로 넘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의 한계를 절감했습니다.
저의 이상적인 롤모델은 어머니였습니다. 통찰력, 유연성, 냉정함, 그리고 추진력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유일한 약점이 자식들입니다. 저를 포함한 아들들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약해지십니다. 그 마음을 저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어머니가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규정하고, 그 한계를 보완하는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집안 경제가 박살이 나,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위기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아버지 (역할의) 부재로 진단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 상(像)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로부터 배운 게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아버지가 왜 존재해야 하는 지, 스스로 증명해 본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이 거의 없습니다. 보고 배운 게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영국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51)는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했습니다. 되고 싶은 존재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면, 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서 그 존재가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문헌과 콘텐츠를 찾아, 텍스트(언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합니다. “성숙한 남성”, 즉 내가 되고 싶은 아버지 모델에 대해 애써 써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