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사회에서 남녀 구별이 남아 있는 공간

성숙한 남성 02

by 꿈애취애

아버지 상(像)을 찾는 작업은 쉬울 줄 알았습니다. 검색만 하면, 관련 문헌과 콘텐츠 등이 금방 나올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지금 사회는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일이 터부시 됩니다. 실제, 제가 속한 글쓰기 모임에서, “모성애(母性愛)는 여자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는데, 여성 회원으로부터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일로 여겨진다는 가벼운 지적을 받았습니다. 내용의 진위(眞僞)와 관계없이, 또 관점의 다양함을 떠나, 남녀 구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지적 받는 세상입니다. 차별(差別)을 없애는 것을 뛰어 넘어, 구별(區別)까지 금기시 하는 시대가 지금입니다. 그래서인지, 좋은 부모가 되는 법에 관한 서적은 쉽게 찾아지는데, 엄마만이 해야 할 일, 아빠의 존재 이유와 같은 키워드는 쉽게 찾아지지 않습니다. 부모의 역할 분담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다들 언급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상(像), 어머니 상(像)의 근본은 가정 내에서의 남녀 역할 분담이고, 이는 남녀 구별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 구별을 현재 사회에서는 거부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남녀 구별을 대놓고 하며, 아주 왕성하게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연예&결혼 시장입니다. 이곳에서만큼은 “남자답지 못하다.”,”여성스럽지 않다” 등의 성인지감수성에 위배되는 표현들이 꺼리낌없이 나오며,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나 이를 소화하는 소비자들조차도 남녀 구별을 당연시 합니다.

이렇게 성평등 사회에서 남녀 구별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공간은, 연예&결혼 콘텐츠입니다. 미혼인 시청자(구독자)가 아빠 같은 남편, 엄마 같은 아내를 찾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저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제가 묘사하는 남성상-아버지 상(像)의 90% 이상은 연예 콘텐츠를 근간으로 합니다.


연예와 결혼, 남녀간의 사랑이 예측할 없는 스파크(불꽃)로 시작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연예가 본인의 결핍을 메꾸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찾는 과정이며, 결혼은 쌍방의 결핍을 메꾸기 위한 결합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결혼을 통해,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충족한다는 것입니다.

결핍은 근원적인 것입니다.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고 봅니다. 배움이 부족하다면, 고학력의 배우자를 찾기 보다는 공부에 매진해 대학, 더 나아가 대학원에 진학해 학위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수입(收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급여가 적다면, 고소득의 배우자에게 눈을 돌리기보다 수익 창출을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핍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진 것, 혹은 성장 과정에서 이미 형성되어 어른이 되어서는 돌이킬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자기 힘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것이기에 타인-배우자로부터 구하게 됩니다. 성별(性別)로 말한다면, 남자의 한계, 여자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로서 할 수 없기에 아내에게 원하고, 여자로서 불가능하기에 남편에게 구한다.”입니다.


연예&결혼 시장에서 일어나는 결핍의 충족은, 이상적인 배우자를 찾는 남녀의 “비대칭적 조건”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대칭적 조건이란, 서로가 상대방에게 똑같은 조건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배우자가 고학력이면 좋아할 것입니다. 수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많은 수입의 배우자감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높으면 높을수록 좋고(학력),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수입). 일부러, 저학력, 저소득을 찾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키, 신장(身長)은 어떨까요? 여성은 본인보다 키 큰 남자를 선호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남성도 본인보다 키 큰 여성을 선호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같다’는 대칭적 조건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자기보다 키 큰 사람과 결혼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이상하게도(?) 남자는 자기보다 키 작은 여성과, 또 여자는 자기보다 키 큰 남성과 결혼하려는 비대칭적 상황이 나타납니다. 나이, 연령차(年齡差)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는 자신보다 어린 여성과 결혼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여자도 자신보다 어린 남성과의 결혼을 원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 커플 대부분은 연상 남성과 연하 여성과의 결합니다.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들이 연상의 남성을 선호한 결과입니다.

이런 비대칭적 조건 뒤에 숨어 있는 “왜”를 찾으면, 아버지 역할에 대한 단초(端初)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것, 여자라서 가능한 것, 이렇게 나누는 짓은 현재의 성평등사회에서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면피(免避)를 위해 연예&결혼 콘텐츠의 탈을 뒤집어 쓰고, 성숙한 남성이라는 모델 정립을 위해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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