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협업을 통한 혁신 3. 지적 재산의 공유
급진적 개방성의 두 번째 원칙은 협업을 통한 혁신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협업이다. 탭스캇은 기업이나 NGO의 혁신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과거에는 혁신이 조직의 중심에서 일어났다. 가장 뛰어난 기획자들이 기업의 가장 은밀한 곳에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혁신이 일어나는 장소가 점점 조직의 가장자리 혹은 경계선(fringe)으로 옮겨가고 있다. 덜 중요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내부 역량과 외부의 역량이 만나는 지점에서 혁신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러한 추세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이전 기업 구조를 보면 전통적인 조직(기획, 총무, 인사, 영업 등)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면서 경영진이 각 부서의 업무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을 경영이라고 불렀다. 90년대 들어서는 각 부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경영의 트렌드였다. 특히 GE를 필두로 6-시그마 등의 경영 혁신 기법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전통적인 조직을 가로질러 프로젝트 단위를 구성하는 팀 경영이 주를 이루었다. 21세기 들어 그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고 이제는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업의 시대가 온 것이다.
탭스캇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큐레이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 작품을 수집하고 관리하며 전시와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탭스캇은 기업이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부의 다양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집하여 의미 있는 단위로 재배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어떤 인재를 찾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 번째 원칙이 아마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에도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지적소유권과 관련된 주장이다. 지적소유권 이슈를 들여다보면 일반적으로 서구 등의 선진국은 지적소유권의 강력한 제도적 보장을 주장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지적소유권에 대한 권리가 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미국의 경영 구루인 탭스캇은 지적소유권을 과감하게 공유하는 것이 새로운 수익 창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기업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의 주장은 몇 가지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지적소유권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라 할 수 있는 선진국의 제약회사들은 최근 들어 매우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각종 바이러스가 출연하고 있지만 제약 회사들의 리서치 능력이 그러한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존 제도에서 인정받은 의약 기술들이 실전 환경에서 점점 효력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던 몇몇 대형 의약 기술들의 지적소유권이 곧 소멸된다는 것도 큰 이슈다.
탭스캇에 의하면 20-40%의 지적 소유권이 수년 안에 만료된다고 한다. 그것은 곧바로 몇몇 대형 제약회사들의 수익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수익 악화는 R&D 예산의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의학계의 더딘 리서치 능력이 악순환을 거듭할 위기에 처해있다. 게놈 프로젝트 등 인체 과학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약계는 그런 혁신적인 흐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고 한다. 의약 전문가들은 더딘 발전의 원인으로 지적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시스템을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탭스캇은 말라리아 백신의 선두주자인 GSK 제약회사의 예를 들고 있다. 백신 시장의 대략 30%를 차지하는 GSK는 지적소유권의 일부를 공유하고 규모는 작지만 리서치 능력이 뛰어난 제약회사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상품을 발굴한다. 특히 말라리아의 경우에는 관련 지적소유권을 최대한 공유함으로써 말라리아 퇴치 전쟁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GSK는 이러한 협업 모델을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왜 공기업도 아닌 제약회사가 지적소유권을 공적 자산으로 내놓을까? 그것은 '말라리아 같은 질병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리서치 방법이 개발되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약품들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GSK의 사례가 기업가들을 설득할 만큼 강력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 출연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탭스캇은 의학계의 이러한 추세가 IT 생태계로 옮겨가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IBM과 리눅스의 관계다. 알려졌다시피 리눅스는 오픈 소스코드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무료다. 그런데 IBM은 이런 무료 시스템에 연간 1,000억 원 정도의 투자를 한다. 영리 회사인 IBM이 투철한 봉사정신을 가지고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탭스캇에 의하면 IBM 스스로 리눅스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고 오히려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리눅스 개발 환경으로 인해 IBM은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게다가 전 세계 코딩 전문가들의 협업을 바탕으로 IBM은 시스템 개발을 넘어 컨설팅과 IT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이익이 무려 9천억을 넘는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일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오픈 시스템을 계속해서 발전시킴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경쟁자들을 견제하는 효과까지 일어난다. GSK와 IBM의 케이스가 모든 기업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산업 환경이 도래하고 있음을 감지하기엔 충분하다. 개방성의 중요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