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守吾를 기억한다. 맘 가득 사랑하는 다산 정약용선생의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다녀왔다. 오래전 여러 해 새해엔 양수리 황토마당 선생의 산소에 오르곤 했다. 스물 두엇의 나이에 다산초당에 들렀다 이제야 다시 왔다. 아이들과 함께 800여 미터 언덕을 차분차분 오르다 선생이 만지고 바라보았을 은행나무 참나무 삼나무 대숲 바람 오래 만지고 살피며 올랐다. 선생의 책들 옮긴 것들 읽다 맘에 들어온 것 기억했다. 집도 밭도 재물도 다 지킬 것 없다고, 그걸 누가 가져가겠냐고, 오로지 '나'를 지키기 어렵다셨다. 그 말씀이 늘 맘에 쟁여 있었다. '나'라는 것은 두면 천리만리 안 가는 곳 없다고, 잘 간수해야지 지키지 못하면 매번 난관과 곤란에 닿는다는 그 말. 맘과 생각이 참 힘세다고 느끼는 요즘 새삼 강진 선생의 작은 거처에 들러 되새긴다. 지난 역사의 시절 '유배'의 질서는 일면 고운 모습이 있다. 무연고의 낯선 고을 한 장소에 내려놓은 혹은 버려진 중심의 권력세상에서 온 인간 '한 사람'에 대한 토착인들의 태도는 많은 생각을 낳는다. 다산선생도 애당초 강진 촌구석에 부려졌던 초기엔 정착 못하고 이 집 저 집 거처와 생계를 구걸하듯 전전했다. 그러다 아전의 자녀들과 젊은 학동들 훈육으로 잠잠 그들의 맘과 생활 속에 들어섰다. 가르치던 윤모 제자들 소유의 산속 작은 집이 점차 개보수를 거쳐 다산초당 그 놀라운 아우라를 지닌 지적공동체로 변했다. 이십여 년을 버틴 초당은 다산의 지적 집단과 사단으로 성장했다. 중앙의 권세들도 조심스러워했다. 유배의 구렁과 난관의 시절을 저작과 인문의 깊이를 더하는 기회로 바꿔놓았다. 자기를 잘 간수한다는 것은 그러했다. 푸른 풀들이 남도의 겨울엔 드물지 않게 눈에 띈다. 선생이 오르내리던 길들 걷는다. 이빨 모양의 강진만 한켠, 저 바다의 바람이 선생의 날들을 얼마나 상처 내고 깊게 익혀 놓았을까. 오늘도 뭇 발길들 대숲 지나 초당을 오르내려도 선생의 걷던 그 길의 자취와 흔적, 고스란하다. 책으로 편지로 말로 되살아나 이제 선생을 따습고 다정히 살펴준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있다. 강진을 다산이 골고루 어루만지고 있다. 읍내 시장에서 도로에서 나무들에서도 선생의 이름 돋아나있다. 선생을 찬찬히 오래 보다 초당을 내려온다. 걍팍한 신산한 삶이 지나갔어라, 선생은 환히 웃고 다정하다, 삶이 그렇다고. 오늘을 잘 살라던 그 말씀이 이백여 년 건너와 푸르게 살아있다. 잘 살아있자, 오늘.
선생의 초당은 새로 지어 딘정해졌어도 저 은행나무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풍풍 은행들 가득 매달아놓고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