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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Mar 31. 2017

수인번호

강제출국을 당한 이에게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는 소식에 새벽부터 언론이 난리다. 모 방송 보도 중에 뜬금없이 ‘머그샷(Mug Shot)’이라는 영어 단어가 튀어나왔다. 피의자가 구치소에서 양치할 때 쓸 컵 받아들고 사진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범죄자들이 이름표를 받쳐 들고 찍는 사진이란다. 범죄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인데, 굳이 영어로 할 건 뭐람. 그냥 수용기록부용 사진이라고 하지, 쉬운 걸 어렵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밥 벌어 먹으려고 욕본다 싶다.

 

"13가지 범죄 피의자가 구치소 수감되어 사진을 찍었다!"라 제목을 달고, 부제는 “종신형 요구하는 국민 원성 뒤로 하고…” 정도면 딱 감이 안 오나? 올림머리가 뭔 대수라고 쓸데없는 이야기에 야단법석이다. 본질을 외면하는 언론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수인번호를 받아든 전직 대통령과 관련하여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만 다루는 언론이 너무 많다. 


수인번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햇수로 십년 전 일이 떠오른다. 수원역 앞 베트남인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유치장에 갇혀 있던 오음리하리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편지를 보내왔었다. 나는 지금도 그의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다. 편지봉투 겉면에는 한글로 괴발개발 철자가 틀린 수취인 이름과 발신인의 수인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용은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 도와달라’는 말 외에는 달리 없었다. 하지만 내용과는 달리 편지지에 적힌 글자들은 유치장 안에서 무료했던지 꾸밈 글자체로 쓰여 있어서 읽기에 참 불편했다. 또한 자신이 죽이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어울려 다니던 한 친구의 손에 의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짓누르며, 늘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던 그는 2008년 4월초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강제추방되었다. 살인이 있던 현장에 우발적으로 가담했다는 점과 초범이라는 사실이 정상 참작되었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고향집 전화번호가 있었고, 인도네시아에 오면 언제든지 들르라고 적혀있었다.


 오음리하리는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사업장 변경할 때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었다. '하리'라 불리던 그는 성격이 밝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를 같은 인도네시아인들조차 무게가 없다고 놀리기도 하고, 왕따를 놓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랬던 그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경찰 조사 때부터 구치소에 있을 때까지 여러 차례 면회를 하면서 그가 살인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경찰은 믿지 않았다. 단지 국적이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담자'로 엮어 버렸다. 물론 살인에 직접 가담했던 이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리로서는 억울한 면이 많았다. 자신의 억울함을 누군가 풀어주기를 기대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국선변호사 말고는 변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쉼터의 탄원서가 도움이 됐는지 징역형은 면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일어난 범죄 현장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내에서 일하고 싶다던 그의 소망은 뭉개지고 말았다. 정확히 10년 전 일이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어 수인번호를 받았다는 소식에 문득 궁금해졌다.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 줄 이들에게 돌아간 하리는 새로운 삶을 잘 살고 있을까? 


수인번호


3973! 


얼룩진다고 

빗물이 고여 뿌옇다고 

차라리 지우려고 해봤어 


이상한 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너의 이름을 짓밟고 

침이나 뱉을까 봐 

너의 이름을 들어내려고도 해 봤어 


이상한 건 

들어낸 자리가 

휑하니 흉했다는 거야 


회색빛 시멘트벽을 비추던 

잿빛 하늘이 

검게 변하던 날 

수인번호를 적어 보낸 너의 편지 

왜 그리 못마땅한지 


이름으로 바뀔 거야 

동판에 새겨진 이름처럼 

누군가 정답게 부를 번호 

아닌 이름으로 


오음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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