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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Aug 05. 2017

바기가 휴가를 '일 없다'고 한 이유

사장님이 쉬라고 해 놓고 주휴수당을 안 주시면 ...

걷는 모습으로만 보면 둘은 영락없이 친구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이다. 툭툭 치며 뭔가 주고받는 모양새가 어릴 적부터 같이 놀던 사이처럼 정겨웠다. 둘 중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먼저 물었다. 그는 하얼빈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 옆의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울란바토르에서 왔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십 년은 더 돼 보이는데도 둘은 죽이 잘 맞았다. 


하얼빈에서 왔다는 중국 동포와 울란바토르에서 왔다는 몽골인은 여느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말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한국에 온 후로 ‘어디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왔어요’라든가, ‘몽골에서 왔어요’라는 대답 뒤에 다시 ‘중국 어디, 몽골 어디’라는 질문이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이 둘에겐 큰 의미가 없고, 귀찮기만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국적을 말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들이 알만한 지명을 미리 답하는 방법으로 질문 하나를 줄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들의 기대에 충족하듯 나는 하얼빈이라는 말에 “아, 안중근!”이라고 했고, 중국동포는 “맞아요. 그 곳이요”라고 했다. 울란바토르라는 말에는 “아, 몽골!”이라고 했고, 그는 “칭기즈칸”이라는 말로 답했다. 죽이 잘 맞는 둘과 대화하는 것은 유쾌했지만, 그리 쉬운 건 아니었다. 자신의 나이조차 말하려 들지 않는 중국동포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과묵했다.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왔다고 했지만, 너른 평야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 위에 올라있는 모습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큰 덩치의 몽골 사내는 그나마 숫기가 있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기바기였고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일 년 됐다고 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바기’라는 이름을 가진 몽골 사람이 있다며 페이스북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그는 “바트*** 바기 많아. 나는 바기바기”라며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둘은 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박스 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평일인데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재미있었다. 


“어제 더워, 일 없어! 오늘 더워, 일 없어! 내일 더워, 일 없어!”
“여름휴가로구나~”
“?...”


옆에 있던 중국동포가 “휴가 맞아요”라고 했다. 바기는 ‘휴가’라는 말뜻을 잘 모르고 있었다. 바기가 여름휴가를 더워서 일 없는 걸로 알고 있는 이유를 중국동포가 설명했다. 


“이 회사는 어이된 게 일 안하면 월급이 줄더라 말입니다. 최저임금으로 받는데, 회사에서 일하지 말라 해 놓고, 그 날은 계산 안 해 주더라 말입니다. 혹시 다른 회사도 그럽니까?”


바기가 여름휴가를 ‘일 없어!’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던 이유를 알고 나자 마음이 짠해졌다. 둘은 휴가비니 연차니 하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2년째 일하고 있다는 중국동포는 휴가라고 쉬고 나면 늘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아무리 무급휴가라 해도 만근하면 당연히 계산해 주어야 하는 주휴수당도 안 주고, 월급이 상당히 줄어들었던 기억 때문에 “법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둘이 일하는 회사는 여름휴가가 있던 주는 만근하지 않았다고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확하게 하려면 그 회사의 취업규칙을 알아야 하지만, 이주노동자 고용업체에서 취업규칙을 고시해 놓는 경우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의 답변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휴가는 사업주 지시에 따른 것이니까 결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적인 말과 함께 문제가 생기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숫기 없던 중국동포의 표정이 밝아졌고, 바기는 멀뚱멀뚱 중국동포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둘의 미소는 나이 차이는 대수가 아니라는 것과 연대감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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