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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Oct 17. 2015

이주노동자는 아는데, 나는 모르는 '한국말'

통하면 즐겁습니다-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보기에 요즘 도시사람들은 삶이 아주 팍팍해 보입니다. 시골에선 그냥 풀이라 통칭하며 낫질로 베어버리기에 급했던 것들을 도시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난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식물의 이름과 그 효능, 이용법을 한의사 뺨치게 알고 있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들에게 도꼬마리, 어저귀, 바랭이, 방둥사니처럼 외국어 같은 식물 이름을 척척 알아맞히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 풀은 어디에 좋고, 이 나무는 어디에 효험이 있고, 이 열매는 효소를 어떻게 만들고, 독성이 있느니 없느니 등등 별 걸 다 안다 싶을 정도로, 식물에 도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 앞에서 시골에서 자랐다는 말을 하기가 뻘쭘할 지경입니다.  

도꼬마리-어릴적 열매가 옷에 붙으면 다른 아이들에게 던지며며 놀던 도꼬마리는 농부들에겐 거추장스런 풀이었지만, 비염 기관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잡초에 불과하던 식물들이 ‘환삼덩굴, 쇠무릎’ 등등 제 이름으로 불리며 대접받는 걸 보면서, 정겹게 여기는 걸 보면 태생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을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다보니 식물박사가 많아지는 거라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세상은 관심을 갖는 만큼 알게 되고, 찾아보려고 할 때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주노동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한국어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오히려 외국인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단순히 그들의 발음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단어나 표현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숫타시니는 지난봄부터 석 달 가까이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생활했던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입니다. 두 달 만에 쉼터를 찾은 그의 얼굴은 한결 밝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수심에 깊던 얼굴은 사라지고, 만면에 웃음 띤 그에게 하는 일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무슨 일해요? 할 만해요?”

“소분해요”

“소분? 아르바이트 해요?”

“아니요. 월급 받아요.” 


벌초를 끝낸 제주도 가족 공동묘지-막 이장하여 벌초가 가지런하지 못하다.


‘소분’이라는 말에 ‘아르바이트 하냐’고 되물었던 이유는 그때가 마침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주였기 때문입니다. 제주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일가가 모여 벌초하는 것을 ‘소분’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벌초대행업체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한 동안 보이지 않던 숫타시니가 ‘소분’이라고 했을 때, 제주가 고향인 저는 ‘외국 사람이 소분이란 말을 어떻게 알지?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주도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벌초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낫과 예초기로 벌초하는 시늉을 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소분’이 뭔지 모른다고 하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습니다. ‘소분’이 ‘작게 나누다’는 뜻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지만, 숫타시니가 포장한다고 했을 때 작업 모습이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답답해 보였는지 숫타시니는 ‘패킹, 패킹’이라고 말하더니, 옆에 있던 비닐봉지를 짚어들고 뭔가를 포장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는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 등을 포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스로 들어 온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작게 재포장하는 일이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설명하는 장면이 상상이 가십니까? 도시사람이 시골사람에게 식물 이름과 그 효능 등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는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말도 알고 보면, 아는 사람만 아는 말이 참 많다는 걸 이주노동자들과 이야기하며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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