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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Feb 09. 2017

"보험은 다 도둑 같아요"... 사빠르의 하소연

사빠르가 보험이 다 도둑 같다고 말하는 이유-코리안드림이 절망으로...

“치료 끝나고 귀국할 생각이 있는지, 계속 일할 건지 물어 봐 주세요?”

“아, 치료 끝나면 귀국한다던데요?”

“그럼, 병가가 너무 오래 돼서 퇴사 조치해야 한다고 해 주세요? 퇴사 처리해도 국내 체류는 문제없고, 우리 회사는 사빠르 대신 고용할 사람을 빨리 찾아야 해서요.”

“병가 낸 지 얼마나 됐죠?”

“5월부터니까 벌써 7개월이 넘었죠. 회사 내규 상 6개월 넘으면 안 되는데, 담당자가 퇴사하면서 조치가 늦어졌어요.”


악성 뇌종양으로 치료를 받고 요양 중인 사빠르는 지난 성탄절 다음날 회사를 그만 뒀다. 정확하게는 회사 측 요구에 따른 것이었지만, 자발적 의사에 의한 퇴직으로 처리됐다. 사빠르는 자신의 병가 기간 동안 회사가 이주노동자 고용 허용 인원 때문에 인력을 고용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꾸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냐. 진료 날짜를 알려 달라’고 묻는 회사 담당자의 전화가 귀찮기도 했다. 


사빠르는 뇌종양 수술 이후 암 전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시력 저하와 사시와 복시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요양 기간 동안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생활하며 전화가 올 때마다 회사를 찾아가서 병원 영수증을 제출하며 설명해야 했다. 그렇다고 유급 휴가도 아니었고, 병원비 지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차비도 만만치 않았고, 병가 기간이 길어지면서 눈치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사빠르는 퇴사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 퇴직한다고 해서 치료받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퇴사하자마자 문제가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 문제였다. 내년 1월에 안구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퇴직하면서 직장 의료보험이 해지되었기 때문이다. 퇴직하고 바로 지역 건강보험 가입을 알아보던 사빠르는 높은 보험료에  놀라고, 자신이 그 보험료를 담당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에 막막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소득(임금)이 없거나 파악이 어려운 외국인의 보험료는 전년도말의 지역가입자 세대 당 평균보험료를 기준으로 산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월 9만 원 이상을 선납해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2014년도에 미납했던 1회분 금액까지 포함해서 18만 원 넘게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소득, 재산,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참가율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반 년 넘게 뇌종양 치료를 받으며 한국에 와서 모아놨던 돈을 다 쓰고, 앞으로도 수입이 있을 까닭이 없고, 아무런 재산이 없는 사빠르에게는 억울할 수 있는 규정이다.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지 알아봤지만 어디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양측 합의에 의한 것이지만, 병가 연장이 거부되어 퇴사한 만큼 내국인이라면 의무가입인 고용보험에 의해 실업급여를 신청해 볼 수도 있다. 치료 중이라고 하지만, 거동이 가능하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구직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고용보험이 임의 가입 대상자다. 유감스럽게도 사빠르는 고용보험을 들지 않아 실업급여는 생각해 볼 수도 없다.


게다가 3년 가까이 일한 회사였지만 퇴사하면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13조 3항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에 해당하는 출국만기보험을 출국한 때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빠르는 악성 뇌종양 치료를 위해 퇴직했지만 출국하기 전에는 퇴직금을 받을 방법이 없다. 다만, 회사 측에서 납부한 출국만기보험과 실제 수령액에 차이가 있을 경우 사측에서 그 차액을 지급해 준다면 일정액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입국하자마자 강제로 가입했던 삼성화재 상해보험에서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한다. 가입하지 않은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시금으로 납입했던 보험이지만, 암 환자에게는 보험 보장이 안 된다는 게 삼성화재 측의 답변이었다. 


업무 외 질병 등에 의해 병원 치료 등의 적절한 조치를 받아야 할 때를 대비해서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다는 명분은 허울에 불과했다. 삼성화재는 사망이나 상당한 신체 절단 등의 상해 외에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빠르는 건강보험이나 상해보험이 칼만 안 들었지 도둑놈 따로 없다 싶었지만, 외국인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의료보험은 돈도 없는 사람에게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두 배 넘게 내라 하고, 상해보험은 아무런 보상도 안 해 주면서 돈만 받아가고, 출국만기보험은 한국에서 받을 수 없고… 직장 없고 아픈 사람은 한국에 살지 말라는 말이네요.” 


이제 사빠르가 믿는 구석은 담당 의사의 말 밖에 없다. “한두 번 수술로 회복할 수도 있다. 경과가 좋으면 한 번의 수술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사빠르에게 지난 4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세월이었다. 코리안 드림이 절망으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사빠르는 소망한다. ‘한두 번이 아니라, 한 번’에 좋은 결과가 있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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