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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ince ko Feb 27. 2017

돈이야 벌면 되는 거고, 몸이 건강해야지

살아서 퇴원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누르

옛 어른들은 봄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며칠을 싹뚝 자르고 28일에서 3월로 뛰었을까요. 꽃샘추위가 남았다 하지만 볕은 더 이상 하늬바람 불던 때를 기억하지 않는 때가 되었습니다. 


“어, 날씨가 따뜻하네요. 이제 봄인가요?”

“곧 3월이니까, 겨울은 다 지났지”

“숨 쉬고 들어갔다가 멈추고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나와서 다행이에요.”


고작 엿새를 입원하고 퇴원했는데, 그새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며 누르가 한 말이었습니다. 누르는 작년에 두통과 구토 증세로 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머리에 출혈이 있다는 걸 알고 입원했었습니다. 하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다가 지난 22일에야 입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외부 충격 없이 뇌에 출혈이 생기는 경우는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누르는 입원할 때부터 퇴원까지 출혈이 있다는 뇌만 치료한 게 아닙니다. 허리 디스크, 간 비대증, 콩팥 이상 등에 대해서도 검사를 했습니다. 평소 이상이 있었던 부위들을 입원한 김에 살펴본 것입니다. 시술과 검사 등의 비용으로 300만 원 조금 넘게 들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만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두 발로 들어갔다가 누워서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이만 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누르가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작년 4월부터 구토와 메스꺼움을 느끼며 잠 못 이룰 때마다 술로 잠을 청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월에 결국 쓰러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지주막하 출혈이라며 당장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수술비용이 1~2천만 원은 족히 나올 거라는 말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정확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곧바로 수술하라고 했지만, 사장은 약 먹으면서 견디다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사장 말대로 열흘 정도 약을 먹었습니다.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면서 똑같은 증세가 반복되었습니다. 다시 밤마다 소주를 마시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올 2월이 되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장에게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 온 대답은 “일할 수 없으면 그만 둬”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결국 3년 반을 일했던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갔습니다. 쉼터에서는 곧바로 병원 진료를 권했습니다. 작년 5월에 진료를 했던 의사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그동안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지주막하 출혈이란 게 뇌혈관이 부풀어 올라서 터지는 거라고 보면 돼요. 풍선을 불면 부풀어 오르는데, 약한 부위가 있으면 터지잖아요. 그런 이치와 똑같아요. 뇌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걸 뇌동맥류라고 합니다. 누르 씨는 작은 뇌동맥류였지만, 당장 수술을 하라고 했던 이유가 있어요. 보통의 경우 뇌동맥류가 터지면 병원에 오기 전에 죽어요. 병원에 와서 치료 받는 사람도 1/3은 수술 받다 죽는다고 보면 되고요, 완치돼서 나가는 경우는 전체 20%도 안 됩니다.”


누르는 비용만 생각하고 수술을 망설였던 자신이 어리석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하다는 의사 선생님 말이 실감나지 않았지만, 입원을 서둘렀습니다. 그렇게 엿새를 병원에 있던 누르는 표정이 여간 밝아진 게 아닙니다. 


조형제를 투여해서 뇌를 CT 촬영한 결과 부어오른 뇌동맥류가 확인됐고, 수술은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경과를 보기 위해 2주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누르 옆에서 간병을 맡았던 이린이 말을 거듭니다. 


“돈도 그 정도면 많이 안 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이린 역시 뇌종양으로 병상에 누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이린 입장에서는 누르가 겪고 있는 일이 예사롭지 않았을 겁니다. 동병상련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돈이야 벌면 되는 거라면서 누르를 위로합니다. 


"돈이야 벌면 되는 거고, 몸이 건강해야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니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도사4:9~10


누르는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날 퇴원하며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묻습니다. 


“이젠 술 먹지 않아도 잠이 잘 오는데, 다 나은 거죠?”


그의 질문에 밤바람처럼 생기가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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