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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믿음과 상상 Oct 09. 2023

삼척으로의 여행

친구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여행

3월부터 달려온 입학 30주년 행사가 드디어 끝났다. 여행 소모임 친구들과 나는 공식 뒤풀이가 끝나고 삼척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 동기들 중 두 명이 술을 안 먹고 운전을 하겠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보여줬다. 고대생에게 뒤풀이에서 술을 안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다. 우리는 12시까지 입학 30주년 공식 뒤풀이를 끝내고 3시간을 달려서 삼척으로 왔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새벽 수산시장이다. 


새벽 수산시장에는 다행히 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배에는 꽃게와 광어등이 가득했다. 우리는 회를 뜰 줄 몰라 광어는 포기하고 꽃게 한 다라를 샀다.


동해바다에서 바로 잡은 꽃게라 숙소에서 아무것도 안 넣고 삶기만 해도 살이 통통하고 맛있었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2번째 뒤풀이가 삼척에서 진행되었다. 술집에서 하는 뒤풀이와는 다르게 조용히 서로에 대해 깊이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삼척까지 오는 3시간 동안 차에서 입학 30주년 행사에 대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어서 숙소에서는 주로 서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아, 그리고 꽃게는 아무 양념도 없이 삶았지만 비린내 하나 없고 담백하고 맛있었다. 살도 통실했다.



사실 꽃게라면도 끓여 먹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먹느라고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밖에서 먹었으면 이것도 만원은 넘었으리라!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고, 같이 멋진 곳을 보면서 친해지는 속도는 술집에서 10번을 만나는 모임보다 훨씬 빠르다.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다른 소모임도 가입해서 친구들을 만나지만, 그곳들과 비교하기 힘들다. 여기 멤버들은 예전 가평 여행도 같이 간 사이라 우리의 친밀도는 2번째 여행에서 매우 높아졌다. 아마 이것이 여행의 매력일 것이다. 우리가 가족과 친밀해지는 것은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은 곳을 보기 때문이다. 여행이야말로 이러한 가족과 같아지는 행위인 것이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아침까지 기다렸지만 날씨가 나빠 포기하고 우리는 3시간 정도 짧은 잠을 잤다. 잠을 자고 나니 숙소가 참 멋진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모임을 운영하는 친구는 여행 전문가로 실제 여행을 계획하는 친구이다. 이 숙소는 이 친구가 국내에서 여행을 기획하는 숙소 중 하나이다, 1년 중 매달 15일 동안 이 친구 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숙소가 국내에 몇 곳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어른들의 여행을 기획하는 친구라 해외여행도 많이 기획한다. 당장 1월에 히말리아 트래킹 여행을 기획 중이다. 이 친구랑 어울릴 때마다 돈을 많이 벌어 따라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숙소는 나중에 여유가 있으면 나 혼자 통째로 15일을 빌려 조용히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조용했고 바다가 멀리 보였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면 글이 절로 나올 것이다.


<숙소 풍경>


우리는 아점을 멋집에서 먹기로 했다. 역시 여행 전문가 친구가 안내했다. 이 친구의 실명은 고재열이다. 브런치 스토리와 유튜브도 운영하니 검색해서 여행에 참여하기를 추천한다. 나보다 유명한 사람이라 네이버에만 쳐도 연걸할 수 있는 각종 정보가 뜨는 친구이다. 우리는 그를 여행을 연출한다고 해서 '고감독'이라 부른다.


고감독 말에 의하면 동해에서 회를 먹으면 하수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선구이와 곰치국을 먹으러 갔다. 평소 생선을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에 생선을 먹을 기회가 적었는데 정말 원 없이 먹었고, 곰치국은 김치가 들어가 얼큰하면서 곰치의 식감이 오묘했다. 해장에 딱인 곰치국은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속이 풀렸다.


개인적으로 먹을 것에 진심인 편이다. 그래서 비싼 돈을 내거나 배달음식을 시켰을 때 맛이 없으면 너무 화가 난다. 반대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너무 기분이 좋다. 



아점을 먹고 우리는 바다로 이동했다. 역시 동해의 물은 깨끗했고 파도소리도 좋았다. 이태리를 가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여기가 나폴리보다 더 좋다고 했다. 



오랜만에 들어 본 파도소리는 상쾌하다. 여행속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지나간다. 느리다는 말은 내 맘의 여유와 함께 주변 풍경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같다는 뜻이다. 느린 영화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 시간을 지배한다. 



우리는 도깨비 시장이라는 곳에서 회 3 접시를 사고, 고감독이 강력하게 추천한 가오리찜을 사서 다시 숙소로 왔다. 



저녁 식사를 회와 가오리찜으로 대신했다. 고감독 말대로 가오리찜을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곰치국과 가오리찜을 처음 먹어본 것 같다. 일부 술을 많이 먹고 피곤한 친구들은 잠을 잤고 일정이 바쁜 친구들은 집으로 출발했다. 


하루 더 잔 친구들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 해돋이 사진도 찍고 숙소 주변도 산책했다. 숙소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책코스가 많다. 숙소에서 바라본 야경도 멋있다. 



다음날 해돋이 촬영에 성공한 친구들 



입학 30주면 행사는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려준 매개체이다.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들과 다르게 대학 친구들은 이해관계가 없어서 편하고, 강제성이 없어서 좋다. 


한동안 친구들과 함께 도파민에 중독된 삶을 살았다. 도파민을 느끼는 삶은 평소 루틴을 따르는 내 삶의 방식과 다르다. 인간은 항상성이 있어서 도파민에 의한 과도한 행복을 느끼면,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등을 겪는다. 마약 중독자들을 생각하면 된다. 여행, 자전거, 등산등의 활동은 그나마 건전한 도파민을 얻는 행위이다. 이러한 걷고 운동하며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는 보상체계를 만들어 중독성을 만든다. 물론 이런 도파민이 꼭 나쁘지는 않다. 도파민은 그 순간 근심 걱정을 없애고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좋은 집, 좋은 차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성찰이 아닌 느낌으로 알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몰입하고 행복감을 만들어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한발 멀리 떨어져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만 먹는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고 식단을 조절할 예정이다. 자극적인 음식을 안 먹고 루틴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커피, 술 등의 중독성이 있는 모든 것을 끊고 내 몸과 정신을 통제할 것이다. 도파민이 없는 삶은 평온함과 성찰, 깨달음을 주고 주변과 자연과 나를 관찰할 기회를 준다. 과도한 행복이 없으므로 과도한 우울이나 스트레스도 없다. 일상에서 몰입하고 집중하며 행복을 얻는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게 하여, 주변의 피어난 꽃을 볼 여유를 주고 자연의 변화를 알아채게 만든다.


그렇다고 이렇게 새로 만난 친구들과 모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단지, 과도한 도파민을 방지하기 위해 보상체계는 하나씩 끊어낼 예정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술을 끊기로 했다. 평소 혼자 자전거를 탈 때는 맛집에 들르지 않아 보상체계를 붕괴시킨다. 신이 만든 내 몸의 프로그램대로, 내 정신이 지배되기 싫다.


아 참! 빼먹은 것이 있다. 입학 30주년 행사에서 내가 쓴 소설이 대상을 받았다. 상금은 많지 않지만 어린이 동화만 쓴 나로서는 성인들이 읽는 소설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받은 상금은 바로 쓰기로 결정했다. 예상치 않게 생긴 돈은 주변인들에게 좋은 기운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다. 


내 소설의 영감을 준 60여 명의 여행, 자전거 소모임 친구들에게 아이스커피와 바나나 우유를 쐈다. 이번에 삼척으로 여행 간 내 소설의 주인공 역할을 해준 친구들에게는 꽃게를 사줬다. 남은 돈으로는 삼척 여행 경비를 했다. 그런데도 돈이 남아서 오늘 중2 딸을 데리고 휴대폰 매장으로 왔다. 휴대폰이 아이들 공부에 방해되어 둘째 딸에게 공폰을 줘서 친구들 단톡방만 참여하게 했다. 지금까지 잘 버티던 딸은 얼마 전부터 친구들과 통화를 못해서 같이 못 놀러 간다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공폰으로 개통을 해준다 하자, 자기도 새 폰을 갖고 싶다는 딸, 그것도 아이폰으로..


그런데 정말 딸에게 아이폰을 사 줄 돈이 갑자기 생겼다. 딸과 같이 개통을 하고 대상으로 받은 상금은 이틀 만에 다 썼다. 이렇게 생각지 못해 받은 돈은 바로 주변인들에게 써서 좋은 에너지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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