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안 지 벌써 스무 해가 넘는다.
처음 만난 그는 내가 일하던 학원 건물주의 막내아들이었다. 여섯 층 규모의 건물을 소유한 집안의 아들이니, 어쩌면 풍족하게 자랐을 것이다. 나와 동갑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아직 소년의 순수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총각으로 살아가던 시절, 그는 이미 결혼해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 수수하게 내려앉은 생머리와 맑은 검은 눈은 사슴처럼 순했고, 그런 그에게 마음이 쉽게 열렸다. 아마도 동갑내기라 친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때 묻지 않은 선함 때문이었다. 마치 세상에 휘둘리며 언제든 이용당할 것 같은…
학원 원장이 그 어리숙함을 이용했다. 원장은 원래 세 층을 쓰던 학원을 네 층으로 확장하려 했다. 권리금을 지불하지 않으려, 무직으로 지내던 그를 꾀어내 관리직을 맡기고, 건물주의 아들이라는 명목으로 2층을 인수하게 했다. 건물주가 직접 운영한다고 하면, 기존 임차인은 권리금 한 푼 받지 못하고 나가야 했던 모양이다. 결국 2층의 국어 학원장은 억울함과 분노를 쏟아내며 옆 건물로 옮겨야 했고, 내가 몸담던 학원은 넓어진 공간을 차지했다.
얼마 뒤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내 학원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그와의 인연도 끊겼다. 그러나 그즈음, 자정 무렵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그와 그의 아내, 쌍둥이 아들을 마주쳤다. 아들들은 욕심 많은 우량아처럼 탐스럽게 살이 올라 있었고, 그의 아내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삶에 지쳐 기운이 다 빠진 듯, 그와의 결혼에 불만이 있는 듯, 아니면 세상 전체에 불만을 품은 듯 보였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네 식구의 얼굴은 각기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상할 정도로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기운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가 관리직으로 있던 학원은 망했고, 그는 아버지의 힘을 빌려 1층에 규모 있는 맥줏집을 차렸다. 나는 그 집에 가끔 들러 술잔을 기울였다.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짓던 그는 바빴지만 희망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의문이 스쳤다. 건물주의 막내아들조차 이렇게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걸까. 물론 임대료는 없었겠지만, 그것조차 세월의 무게 앞에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손님이 줄어들며 결국 맥줏집은 문을 닫았다.
그는 다시 음식점을 차렸다. 아이들과 함께 그의 닭갈비를 먹으러 몇 번 갔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종업원 수는 줄었고, 마침내 넓은 매장을 혼자 지키며 손님을 상대해야 했다. 음식은 늦게 나왔고, 손님 응대도 늦어 손님들은 하나둘 발길을 끊었다. 나 또한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몇 년 후 헬스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지저분하게 기른 수염 아래로 폭삭 늙어버린 얼굴, 그 맑던 소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의 풍파에 짓눌린 표정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짧게 인사만 나누고 각자 운동에 몰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어쩌다 이렇게 희망 없는 얼굴이 되었을까. 한 번도 화내는 걸 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그의 음식점에 찾아가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이리라 다짐했다. 그동안의 삶이 어땠는지, 스무 살 훌쩍 넘었을 그의 아들들은 어떻게 컸는지, 늘 지쳐 있던 그의 아내는 지금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물어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문득, 내 젊음도 그렇게 서서히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늘한 슬픔이 가슴을 적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