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삶
서울을 떠난 것은 한겨울이었다.
연구소 계약이 끝나고, 남은 연구비는 통장에 48만 원 남짓.
그는 EOS의 전원을 껐다. 몇 년 동안 쏟아붓던 세상의 ‘공식’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논리와 실험으로 신의 루프를 증명하려 했지만, 결국 그 자신이 그 루프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났다. 북한강을 따라 버스를 탔고, 강원도 산골의 낡은 민가를 빌렸다.
지붕은 샜고, 난로 연통은 부식돼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잠잠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자리를 찾은 것처럼.
그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마당에 쌓인 눈을 쓸고, 산 아래 약수터까지 내려가 물을 길어왔다. 물을 데우고 커피를 내린 뒤, 벽에 걸린 낡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더 이상 연구원 시온의 얼굴이 없었다. 그저 “살아 있는 인간 하나”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그는 오랜만에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걸 느꼈다. 논문도, 프로젝트도, 사회적 의무도 없었다. 그냥 존재했다. 아침이면 해가 떠오르고, 저녁이면 산 너머로 사라졌다.
그 단순한 리듬 안에서 시온은 서서히 인간이라는 껍질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오두막 창가에 앉아,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시온 박사님이신가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문을 열었다. 초겨울의 찬 공기와 함께, 패딩 점퍼를 입은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머리는 젖어 있었고, 손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거… 당신 논문이에요.『의식의 루프와 관찰의 기하학』, 4년 전에 쓰셨던 거.”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