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여행을 가고 싶은 진짜 이유

여행의 본질

얼마 전에 전라도 순천에 다녀왔다. 아들과 같이, 그냥 얼굴 한번 보자는 외삼촌 말에 내려갔다. 운전을 오래 해야 하는 길인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단순히 친척집을 방문하는 건데도, 여행처럼 느껴지고 괜히 설렜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아마 여행을 가면, 잠깐이라도 돈 걱정을 내려놓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는 늘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이들 학원비, 카드값, 생활비, 모자라면 어디서 줄일지, 이걸 사도 되는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그런데 여행을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은 그냥 쓰자.’
이렇게 마음이 바뀌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몸이 느슨해지고, 생존 모드가 내려간다.


여행이 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가족을 통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늘 신경이 쓰인다.

'몇 시에 자는지, 숙제는 했는지, 핸드폰은 얼마나 보는지, 게임은 언제 끌 건지, 공부는 왜 이렇게 안 하는지.'

잔소리를 안 하면 불안하고, 하면 또 싸운다. 그런데 여행만 가면 이상하게 기준이 바뀐다.

'놀러 왔는데, 그냥 두지 뭐.'
유튜브를 보든, 게임을 하든, 밤늦게까지 떠들든, 그냥 지나간다. 그래서 가족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내가 통제를 내려놓으니까 마찰이 줄어드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중에는 ‘일하는 나’에서 빠져나온다. 집에 있을 때는 쉬고 있어도 쉰 게 아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일이 돌아간다.

비대면 수업 등록률, 다시 찍어야 하는 녹화 강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상담 정리, 일정, 수익 구조.

그런데 여행지에 오면 생각이 아주 단순해진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여기까지만 간다. 그 단순함이 편안함으로 변한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들이 떠올랐다.
대형 전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비대면 수업을 하고, 글을 쓰고, 캠핑을 하고, 유튜브를 찍으며 자유롭게 사는 삶.
나는 그걸 내 인생의 꿈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여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거다. 돈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고, 가족을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고,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고, 잠깐이라도 ‘아빠’, ‘남편’, ‘교육 전문가’가 아닌 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하면 자유롭다”는 이미지로 내 욕망을 포장해 온 셈이다. 하지만 자유의 본질은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 이 삶에서, 통제와 책임이 나를 짓누르지 않는 상태, 그 상태가 진짜 자유였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왔다. 만약 내가 지금 돈 때문에 스스로를 조이지 않고, 가족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일과 휴식의 경계를 만들고, 내가 원하는 선택을 내 기준으로 할 수 있다면, 굳이 전국을 떠돌며 살지 않아도 된다. 카페든, 동네 공원이든, 집 거실이든, 상태만 맞으면 어디든 괜찮다.


여행이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여행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 상태를 지금 여기서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사람들이 가지는 꿈이라는 것은 사실 분석을 하면 대부분 단순한 욕망에서 나온다. 그 욕망의 본질이 뭔지를 찾으면 자연스럽게 꿈은 사라진다. 예를 들어 포르셰를 타고 싶은 꿈은 자유와 인정욕구에서 나온다. 인정욕구는 삶의 결핍에서 나온다. 그 결핍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포르셰의 욕구는 점점 사라진다. 강남 아파트에 살고 싶은 꿈도 비슷하다. 돈으로부터 자유와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욕구와 결핍으로 인한 인정욕구에서 나온다. 결핍의 욕구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나답게 살면 사라진다. 경제적 자유와 안정적인 삶은 인식의 전환에서 나온다. 가령 우리는 원시시대같이 맹수의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시대도 아니다. 대부분의 불안은 비교에서 나오고 생존에 대한 위협은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유전자에서 나온다. 지금의 내 삶이 안전하고 충만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강남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서서히 약해진다.


결국 미래의 뭔가를 꿈꾸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나의 욕망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별 것 없네'라는 공허가 밀려오게 된다.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핵심은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정렬하는 것이다. 충만하고 여유 있는 삶을 원하면 지금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핵심은 그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조이는 것들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다. 통제 대신 신뢰로, 불안 대신 속도를 늦추며, 생존 대신 잠깐 숨 돌리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시작했을 때, 여행이 아니라, 삶 자체가 조금씩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게,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여행의 본질”, "욕망의 본질", "꿈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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