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만드는 사람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항상 ‘상황’을 만든다.
모임을 기획한다. 자리를 주선한다. 사람을 연결한다. 일을 벌인다.
겉으로 보면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공통점이 있다. 항상 자기가 중심이다. 본인이 주도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본인이 빠지면 구조가 유지되지 않는다. 본인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구도를 만든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관계 그 자체보다 “내가 필요해지는 구조”를 만든다.
왜 그럴까?
이 사람들은 존재감이 약하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진다. 그래서 ‘역할’을 만든다.
총무가 되고, 기획자가 되고, 중간자가 되고, 연결자가 된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할게.”
“내가 알아볼게.”
“내가 처리할게.”
이 말들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나 없으면 안 되지?”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구조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점점 피로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애매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 결정권이 흐릿하다. 약속이 계속 바뀐다. 중요한 정보는 나중에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항상 같은 말이 나온다.
“미안해.”
“어쩔 수 없었어.”
“나도 힘들었어.”
이 사람은 일을 주도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판은 깔았지만 마무리는 각자가 하게 된다.
이게 반복되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된다.
계속 눈치를 본다. 상황을 예측하려 한다. 괜히 먼저 움직인다. 괜히 돈을 더 쓴다. 괜히 감정을 소모한다.
결국 다들 피곤해진다.
그런데 정작 판을 만든 사람은 “나는 열심히 했는데…”라는 표정이다.
이 유형의 핵심은 ‘착함’이 아니다. 통제다.
직접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분위기로 움직인다.
직접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미안함을 심는다.
직접 권력을 잡지 않는다. 대신 구조를 설계한다.
그래서 더 교묘하다.
정렬이 시작되면 이 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중심을 잡으려 하는지, 누가 애매한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지, 누가 책임을 흩뿌리는지.
그리고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이때 관계는 빠르게 정리된다.
이걸 겪고 나면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좋은 관계는 누군가가 판을 만들지 않는다. 각자 자기 몫을 한다. 각자 자기 책임을 진다. 각자 자기 비용을 낸다. 조용하고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