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사라졌다!

오동도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 결핍, 행복, 그리고 감각으로 사는 법

아들과 여수에 갔다. 맛집에 가고, 밤바다를 걸었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특별하지 않았다. 설레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 같았다. 여행이 아니라 일상 같았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걸렸다. 심지어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억지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여수는 처음 왔으니까, 다양한 것을 보고 경험하는 거라고.


오동도 섬을 걷다가 멈춰서 생각했다. 이 느낌의 원인이 뭔가.


문득 내 일상이 떠올랐다. 나는 매주 아들과 맛집을 간다. 주말마다 호수공원을 걷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여수에서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나는 여행에서나 할 것 같은 삶을 일상으로 살고 있었다. 여행이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내 일상이 이미 그 수준에 와 있었던 것이다.


원하는 삶, 충만한 삶을 일상에서 살고 있었기에 여행이 특별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편한 생각이 뒤따라왔다. 여행이 익숙해져서 특별하지 않다면, 내가 꿈꾸는 삶이 이루어져도 결국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그 삶이 실현되어 몇 달이 지나면, 그것도 그냥 일상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 그렇게 못 사니까 동경하는 것이지.


은퇴한 사람들이 처음엔 자유롭고 좋다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뭘 해도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꿈이 이루어지면 그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재가 된다. 그리고 인간은 현재를 특별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기쁨으로 인식하려면, 그것이 지금 없어야 한다. 결핍이 있어야 채워짐이 기쁨이 된다. 늘 있으면 더 이상 결핍이 아니니, 기쁨도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이것을 이해하고 나니 하나가 분명해졌다. 목표를 이루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면 안 된다. 목표는 이루어지는 순간 일상으로 편입되고, 그다음엔 또 다른 목표가 필요해진다. 그 게임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안의 모든 괴로움과 결핍을 없애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것이 다 사라지면, 삶은 특별히 기쁜 것이 없어진다. 삶이 조금 답답해야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나가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일상이 고달파야 여행이 해방이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결핍을 없애려는 노력이 오히려 기쁨을 없앤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게 맞는가. 지금의 삶이 답답하다면, 그것을 빨리 해결하려 하지 않고 그냥 느끼는 것이다.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역설적으로 작은 것에서 더 자주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괴로움을 없애려 할수록 기쁨도 함께 줄어든다. 낙차가 있어야 진폭이 생긴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생각을 멈추고 감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분석하지 않고 그냥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평소에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밥 한 숟가락의 온도. 생각이 멈춘 자리에서 감각이 살아난다. 그런 순간이 오면, 이 모든 감각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진다.


그런데 나한테는 또 다른 기쁨의 통로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탐구하는 것 자체다. 삶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인간이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를 추적하고,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 목표를 이루는 기쁨도 아니고, 자극에서 오는 흥분도 아니다.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조용하고 깊은 기쁨이다. 이것은 익숙해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탐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여수의 바다는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동도를 걸으며 이것을 생각해 낸 것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자극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각이 살아나고, 감각이 살아난 자리에서 의미가 자란다. 나는 여행을 다녀온 게 아니라, 삶을 대하는 방식 하나를 건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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