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공학이 학습의 혁명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메모리 반도체 덕에 컴퓨터의 데이터 저장능력 또한 놀랍게 발전해 왔습니다. 클라우드 데이터를 저장하는 상업용 데이터 센터의 규모를 보면 어마어마합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는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네이버의 데이터 센터는 12만 대의 서버에 240PB (페타바이트)의 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페타바이트는 기가바이트(GB)의 백만 배입니다.
인간의 뇌의 기억용량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데이터 센터와 비교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폴 레버(Paul Reber) 박사에 따르면 이론상 보통 사람의 뇌의 기억용량이 무려 2.4 페타바이트에 달할 수 있다고 하네요. 그 데이터 용량을 대략 환산해보면 TV 영화 3백만 시간분(300년)에 맞먹는 데이터 용량이라고 하니 놀랍죠? 한국에서 가장 큰 네이버의 데이터센터라고 해봤자 보통 사람 100명분의 기억용량밖에 안 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의 뇌의 경의로움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수십 메가와트의 전력에 엄청난 온실가스를 방출하는 데이터센터와 뇌의 에너지 효율을 감히 비교나 할 수 있을까요.
뇌가 놀라운 효율과 저장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희미해지기도 하고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손상이 일어나 기억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해마(hippocampus)라고 하는 뇌 측두엽의 한 부분은 기억을 처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름이 불과 1cm에 길이 5cm의 작은 부분이지만 기억을 처리하기 위해 해마의 한 개의 뉴런(신경세포)은 2-3만 개의 다른 뉴런과 네트워크를 형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 해마가 치매나 뇌졸중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 손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단기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저장이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거고요. 그렇게 되면 전형적인 치매환자에게 관찰되는 현상, 즉 오래전에 발생했던 사건은 기억하지만 방금 일어난 사건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기억 보조장치(memory prosthesis)는 치매와 같은 질병으로부터 기억력을 회복시킨다는 목표 하에 개발되기 시작한 기계입니다. 미국 남가주대학(USC) 의공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테드 버거(Ted Berger) 박사는 최초로 쥐의 해마로부터 기억에 대한 신호를 잡아내면서부터 기기의 개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설명했듯 해마에 손상이 일어나면 단기 기억 신호가 장기기억 신호로 변환되는 과정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버거 교수는 보조장치를 이용하여 신호를 연결해주는 가교(bridging) 시험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단기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성공적으로 변환되어 저장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버거 박사는 더 나아가 함께 오랫동안 공동연구를 진행했던 웨이크 포레스트(Wake Forest) 의대 교수인 로버트 햄슨(Robert Hampson) 교수와 함께 2018년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도하였습니다. 때마침 뇌전증 (간질)으로 두개골을 열어 해마에 접근이 가능했던 환자가 있어서 시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 결과 놀랍게도 기억 보조장치는 환자의 기억력을 37%까지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아직 인간의 기억의 신호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델링과 AI를 이용하면 가까운 미래에 판독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죠. 그날이 온다면 어쩌면 기억 보조장치는 치매환자의 보조장치의 수준을 넘어 더욱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 낼지도 모릅니다.
만약 기억 보조장치가 환자뿐만 아니라 정상인의 기억도 증강시킬 수 있다면 아마 너도나도 기억장치를 이용하려 하겠죠. 학습내용을 신호로 코딩하여 해마에 직접 입력시킬 수 있다면 앞으로의 우리의 학습 방식은 영원히 달라질 것입니다. 더 이상 책을 읽는다거나 수업을 들을 필요 없이 USB의 데이터를 읽듯 뇌에 직접 입력하기를 원할 것이니까요.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