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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은 채워야 다시 나눌수 있다.

by 민수석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바닥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잘하고 싶었고, 부탁을 받으면 웬만하면 “제가 할게요”로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성실함이라고 믿었고, 책임감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표정이 낯설었습니다.
눈빛은 흐려져 있었고, 마음은 오래전부터 비어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남을 챙기느라 정작 나를 챙기지 못한 시간이 꽤 길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고갈된 사람은 누구에게도 진짜 의미 있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잔이 비어 있는데 무언가를 계속 따라내려고 했던 거죠.

그 후로 작은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러닝 3km, 따뜻한 커피 한 잔, 10분의 글쓰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루틴이 아니라
내 잔을 다시 채워 넣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먼저 채우기 시작하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부드러워졌고
일을 바라보는 눈도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여유는 시간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충만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희생’을 미덕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비행기 비상 상황에서
내가 가장 먼저 써야 하는 건 내 산소마스크입니다.
숨을 쉬어야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 잠시 멈춰보아도 괜찮습니다.
다시 나누기 위해,
먼저 나를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빈 잔으로는 아무것도 줄 수 없습니다.
채워진 나로 살아갈 때 비로소 마음의 온기가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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