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글쓰기

좋아해서 시작했지만 끝이 안 보이는

by 개미


"당신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너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

-닐 게이먼





글쓰기의 시작

트위터(twitter)의 공동 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가 글쓰기 플랫폼 미디엄(medium)을 공개한 것이 4년 전인 2013년 이야기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플랫폼, 다음카카오의 브런치(brunch)가 베타 오픈 기사가 2015년 6월인 것을 보면 미디엄이라는 플랫폼은 '공개'에 있어서는 2년 정도 빨랐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하루에 4~5개의 장편의 일기를 적어내던 나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일단 글로 적어보고 그것이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평가받는 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해야지만 하루 종일 담아뒀던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미디엄을 이용해볼까라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첫 글을 시작해보자고 생각해서 요리에 관련된 글을 적었다. 아직은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주제(가령 종교나 정치)들을 적기에는 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서른이 되어가면서도 똑같은 거 보니 종교나 정치를 적는 데에는 나이가 크게 상관없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발행이었다. 글을 쓰기는 했는데 공개하기가 무서웠다. 지금 당장 나를 기다리는 독자가 수 만 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우면서도 두렵기 시작했다. 소심한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에 가까워졌을 때 버스 벨을 못 누르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별거 아닌데 괜히 민망하고 무서운 그 느낌.







시작은 했는데 '흔적'만 많다.

브런치가 론칭된다는 소식을 듣고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아마존 에코에서 SKT 누구(NUGU)로 넘어가는 것처럼 '나는 한글로 글을 적을 거니까 한국사람들이 많은 플랫폼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브런치는 미디엄과 달리 사전에 허락된 작가들만 글을 쓸 수 있어서 당장 카카오에게 보여줄 글이 필요했다. 저명한 소설가나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글이라면 일기만 쓰던 사람에게 '작가가 될만한 자격을 보여주는 글'을 내놓으라니 당장 신청할 글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던 게 짝사랑하고 있던 그 당시의 내 심정을 담은 글 몇 편을 적었고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야심차게 카카오에게 보냈다.



하지만,


"응 너는 안돼~"



생각보다 카카오 직원분들은 열심히 일하고 계셨다. 이런 애들 장난 글로는 고결한 브런치에 입성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열심히 개발하고 있을 카카오 개발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미디엄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글이나 정치, 경제, 연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생각이 날 때마다 글을 적어놨다. 물론 온전한 글을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TK Reminder를 이용하여 키워드나 몇 가지 문장들만 적어두고 나중에 글을 완성하는 형태로 적어놨다.


TK는 브런치에는 없지만 미디엄에는 있는 기능으로 나중에 돌아와서 글을 완성시키거나 개선할 때 아이디어를 상기시키기 위한 어떤 장치이다. TK를 적으면 왼쪽에 노란색 글씨로 'TK'라고 뜨고 그것을 보면서 글을 차근차근 완성할 수 있었다. (자세한 정보는 가장 아래에 링크)


그래서 여차저차 글도 쓰고 뭐도 하고 하면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공학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고 기술적인 글도 함께 적어보고 싶어졌다. 안드로이드나 파이썬, 유니티 등 내가 했던 것들의 라이브러리나 내가 알고 있는 팁들을 적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허접하다는 것을 깨닫고 ( 설명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 엄청난 메타인지 효과..) 기술적인 것은 점차 보완해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미디엄에서 몇 개의 글을 쓰고 나서 몇 개월 후 다시 브런치 작가로 신청하여 이곳에 입성할 수 있게 되었다.(만세!)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새 둥지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미디엄에서 글을 옮기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글들을 발행(publish) 하지 않고 초안(draft)으로만 남겨두었는지 확인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더 많은 글을 쓰자는 의미에서 정리해보기로 했다.



아직 글을 다 적지 못한 것들.


현재 미디엄 계정에는 31개의 초안들이 있고 (정말 많이 쓰긴 썼다.) 대부분의 글은 짧은 수준으로 남아있다. 몇 개의 글은 거의 완성해둔 것도 있는데 글을 읽다 보면 부자연스러운 곳들이 많아서 아직 수정 중이다.


주제는 크게 잡자면 자기계발 / 연애 / 시사이슈 / 사회현상 등이 있을 것 같고 간혹 소소하게 게임이 있었다.



예전에 미디엄을 했다는 것이지 브런치에 글을 안 써놓은 건 아니다.

브런치에도 글을 써놓은 것들이 많은데 대부분 전에 써놨던 짝사랑 글이고 최근에는 광고, 4차 산업, 영어학습 등을 쓰고 있었다.








이거 계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기 전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의견을 배설(?)할 곳이 없어서 항상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글을 쓰고 난 이후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평생을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터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생각 버리기 연습 1,2권을 다 읽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저자: 코이케 류노스케) 글을 쓰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된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내 생각을 공유하며 의견을 듣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행위가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대학교 때의 내가 떠올랐다. 군대를 미루고 경제학과에서 컴퓨터 공학을 복수 전공할 때 아는 누나가 내게 "미래에 뭘 하고 싶은데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저는 여행작가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열심히 글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었지 경제를 읽고 소프트웨어를 만들면서 큰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고. 대학에서의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나로서 학생이고 싶다는 대화를 했었다.


지금이야 어쩌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군 복무도 해결되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더 모호해지고 잘 안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직장, 많은 연봉과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계속해야만 하는지, 내가 정말로 계속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겠다.








TK에 대한 자세한 정보 : https://help.medium.com/hc/en-us/articles/214937928-TK-Reminders


기존 미디엄 글 주소 : https://medium.com/@Rhee_JH


위에서 언급한 생각 버리기 연습 책 :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0926298&orderClick=LEA&Kc=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