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붕어도 바다로 갈 수 있을까요?
어떤 이들은 쉽게 지나치기 쉽다.
엄마, 다방 종업원, 자장면 배달부, 전교조 활동을 하는 국어 선생님 그리고 영화감독 지망생.
쉽게 분류되고, 쉽게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들의 주변인들뿐이다. <홀연했던 사나이>는 시작을 묻는 이야기다. 바다에서 태어난 물고기가 다시 바다로 갈 수 있냐고 묻는 이야기.
이하는 모두 개인적 의견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며, 대사들은 기억과 메모에 의존해서 쓰였으며, 불명확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승돌'이는 스태프부터 성실히 일하고 있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시나리오는 퇴짜 맞기 일쑤인 삶.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하던 승돌이는 과거를 떠올린다. 그가 가장 후회된다고 말하는 순간은 '꿈'을 가지게 된 순간이다. '영화감독'이란 꿈을 시작했던 순간이다. 바로, '홀연했던 사나이'가 자신의 삶에 등장했던 순간 말이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질문하는 사나이
'어느 위대한 감독이 이야기했지. 세계적인 명배우도 처음에는 보통 사람.
어리석은 인간들은 절대 발견할 수 없지. 보통 사람 안에 숨어있는 우주적인 아름다움'
-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포스터 대사 중에서
1987년 배경의 <샛별다방>은 승돌과 승돌 어머니(홍미희)의 삶의 터전이다. <샛별다방>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매일 넘어지는 자장면 배달원, 커피를 배달하는 종업원, 매일 최루탄을 맞으며 다방으로 피신하는 국어 선생님.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샛별다방>의 사람들뿐이다. 이 평범하고,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 사이로 가장 화려한 직업과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사나이가 등장한다. 그는 공짜로 내어주는 엽차를 맛있게 먹고 도무지 떠나질 않는다. 취식하듯 그들 곁에서 먹고, 담배를 피우며 그들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 한다.
그는 자신을 '감독'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질문하며 경계심을 허물고, 그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우리는 그의 나이, 이름을 모른다. 그는 등장하는 내내 다른 인물들에게 주목할 뿐이다. 우리는 그가 가늠해서 말하는 것을 그러려니 하고 믿을 뿐. <샛별다방>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이 '사짜' 냄새가 거하게 나는 사나이의 말을 믿는다.
'할리우드가 할리우드 같은 이야기만 써서 지루한 영화판'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 친구 '톰'의 고민을 곁들이면서 '아주 평범한 여러분과 같은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한다. 그가 찾고, 찾던 '원더풀'한 이야기는 <샛별다방>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중심은 '승돌'에게서 '홀연했던 사나이(이하 사나이)'에게로 넘어간다. 사나이는 <샛별다방>에 모인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사나이는 이 극 중 유일하게 질문하는 사람이다.
'어머니' 말고, '홍미희'
"제 이름은 '홍미희'고요, 제 아들 승돌이는…"
미희(본명 홍미희, 영화감독을 꿈꾸는 승돌이의 어머니이자, <샛별다방>의 주인)는 인터뷰를 시작한다. 미희에게 사나이는 "승돌이 얘기 말고, 어머니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한다. 그는 꿈을 묻고, 시작을 묻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머니' 미희도 수줍었던 소녀였던 적이 있었다. 꿈이 많아서 육지로 나와 미싱을 돌리다가 손가락도 다치던 때, 어릴 적 힘들었을 때, 누군가 건네준 따뜻했던 차를 마음에 기억했다. 마음이 넉넉해진 순간. 그의 허기를 채우던 건 '따뜻한 차'였다. 차와 책과 음악만 있어도 좋다며 차린 게 지금의 <샛별다방>이다. <샛별다방>의 미희는 세상에 낭만을 나눠주는 게 꿈이다. 미희의 <샛별다방>엔 도박도 없다. 웃음도 술도 팔지 않아 월세를 내기 힘든 수익구조이지만, 미희가 <샛별다방>을 계속 이어나가는 건 당신이 받았었듯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차를 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미희는 '그렇게' 잘살고 있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있어서 영화감독을 만났다고 믿는다. 미희는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믿었다.
이런 식으로 '홀연했던 사나이'는 꽃님(본명 김꽃님, 다방 종업원)이 가지고 있던 배우란 꿈을 다시 일깨워주고, 매일 최루탄과 싸우는 국어 선생님의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매일 넘어지는 가출 청년 배달원인 만태(본명 고만태)의 사랑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아마 이 극을 보면서 마음이 저릿하고 시큰거리는 순간들이 많은 것은 주목받는 삶이 아닌, 마이크 한 번 쥐어져 본 적 없이 달려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기 때문일 테다.
바다를 건너온 이야기 - '엄마'의 20대
미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제주도란 먼 육지로부터 넘어와서 미용 일을 시작한 엄마가 생각났다. 미희와 승돌이처럼 난 엄마를, 엄마는 나를 의지하며 살았다. 아빠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엄마는 기숙학원에서 사람들과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단출하게 자며 미용을 배웠다. 인생도 처음, 미용 일도 처음, 육지의 삶도 처음이었을 그녀의 삶은 너무 고됐다. 여자에겐 나이가 많은 것도 흠이라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녀의 시작엔 갖은 핀잔 소리가 그녀의 삶을 가득 메웠었다.
그녀가 힘들 때 유일하게 했던 일이란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고,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필사해서 책상 유리에 끼워 넣던 것이었다. 그녀의 사랑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남편은 무능력했으며, '암'이란 질병을 앓아 병원을 드나들기 일쑤였다. 매일 보고 싶고, 만지고 싶던 아이를 두고 병원에서 밤을 새워야 했고, 친척들, 사촌들, 이웃들에게 아이를 맡겨야 했다.
딸은 친인척들에게 때론 이웃 어른들에게 물었다. "몇 밤 자면 엄마가 와요? 아빠는요? 몇 밤 자면 엄마, 아빠가 와요?"….
서울 끝자락에 시골을 닮은 동네, 남향에 그럴듯한 월세 가게를 얻었지만, 부엌도,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미용실엔 이웃과 단골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대단한 어른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어머니'로 인생의 반을 보낸 그녀는 30년이 넘도록 피붙이 자식을 향한 마음의 모진 덩어리를 안고 산다. 그녀는 해준 것이 있었어도 더 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그녀의 딸이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한다고 말하면 너무 괴로워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가끔 딸이 조금씩 인생이 풀리는 것 같으면 조금씩 당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줄 뿐이다. 그녀의 딸은 당신이 죽고 나면 세상에 남는 건 어릴 적 당신이 썼던 한 권의 일기장이 전부라 어머니가 궁금하고 다르게 기록하고 싶지만, 어머니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다. 딸은 일기장 속의 어머니가 그땐 그랬었노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괴로움을 감추시지 못하는 어머니의 슬픔을 구태여 꺼내지 말기를 바라는 그녀의 바람대로 묻지 않기로 한다. 난 그래서 미희의 이야기(노래)에 눈물을 감추면서 극을 봤다. 어릴 적 사진첩 속 엄마의 시작의 설레었던 순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미용협회에서 상을 받던 엄마, 반려자를 만나 성당에서 식을 올리던 순간의 엄마, 내가 태어나던 날에 품에 안고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 담긴 사진 속 엄마 생각이 나서 말이다.
기록 욕심 있는 자식들
승돌도 자식이라 그랬을까. 승돌은 자신의 어머니(미희)의 이야기는 자신이 쓰고 싶다고 한다. 그가 집필한 시나리오엔 엄마 미희와 국어 선생님 태일은 서로 사랑 고백을 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의 대사대로 되는 게 없다. "대사대로 하면 되는데…."라며 승돌이 볼멘소리를 한다. 왜 대사대로 되지 않을까? 가장 최적의 시나리오인 해피엔딩을 두고서, 캐릭터들은 연출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비록 현실이 아닌 시나리오라서 현실이 아닐지라도, 미희와 태일은 서로가 가장 설레고, 진심인 순간에 고백하고 싶다고 한다.
"어느 위대한 감독이 이야기했단다. 나는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줬을 뿐인데, 그들은 스스로 숨 쉬고,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사랑하더란다."
- 사나이가 대사대로 되지 않자 이상하다고 느낀 승돌에게 한 말
누군가 나의 꿈을 믿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면….
"엄마는 승돌이가 조감독인 게, 너무 자랑스럽단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샛별다방>에 모인 사람들이 승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장면이다.
<샛별다방>에 모인 이들은 승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의 꿈을 믿는다고, 승돌이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그가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응원을 받아본 게 언제더라…. 문득 승돌이의 머리에 얹혀지는 따뜻한 손들이 모일 때마다 내 곁에 남아있는 응원의 말들을 세어 보았다. 내가 절망스러울 때마다 '신이 나를 이렇게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다른 한 편에서 믿고 있는 구석은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했던 얼굴을 잊을 수 없어서'다.
승돌이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사짜 냄새'가 진하게 나는 사나이에 넘어간 <샛별다방>에 모인 이들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나이에게 보여줬던 이웃들의 응원은 승돌이를 향한 응원이 됐다.
저마다 잊고 살던 꿈들이 모여, 인생의 찰나 같던 순간들이 우리 앞에 '홀연했던 사나이'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1987년 <샛별다방>은 바다로 향해가는 유람선
후반부 넘버(이야기가 담긴 뮤지컬의 노래)에선 승돌과 사나이가 서로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를 보며 '바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고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금붕어가 자신이 태어난 바다로 향해도 되냐고 묻고, 대답을 주고받는다.
사나이는 금붕어가 태어난 바다에서 왔다.
사나이는 바다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있는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바다는 곧 <샛별다방>을 둘러싼 관객과 무대이며, <샛별다방>은 유람선처럼 동그란 조명들로 감싸져있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고정된 하나의 무대만 가지고 간다. 승돌이의 취미생활인 오락실에 관한 <갤러그 송>에선 빔프로젝터를 사용하여 마치 게임 속 한 장면에 들어간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장면마다 핀 조명은 인물들이 서있는 장소를 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헐리웃으로 만들기도 한다. 마침내 객석을 푸른색 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의 고정된 무대는 전체적으로 보면 바다를 향해가는 유람선 같기도 하다. 사나이는 무대 왼편에서 걸어 올라와 중앙에서 핀 조명을 맞으면서 주 무대가 되는 <샛별다방>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데, 이 계단이 있는 벽면엔 바다를 담은 이미지가 액자에 담겨 있다. 총 3개의 액자인데, 파도, 바다, 기러기가 있는 바다 등의 그림으로 이뤄져 있다.
클라이맥스로 향하며 캐릭터들은 무대에 일렬로 서서 관객과 마지막 안녕을 고하는데, 사나이는 계단 위, 정중앙에서 등장하여 마치 이 모든 이야기를 진두지휘한 듯한 기세로 인사를 한다. 사나이는 관객과 이 극의 등장인물들을 이끈 항해사이자 선장은 아니었을까?
<문명특급>의 수현OPPA에서 <홀연했던 사나이> 속 사나이까지
이번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에서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바로, 그룹 유키스(U-KISS) 출신의 신수현이다. 작년 <문명특급>으로 다시 한번 알게 된 인물이다. <문명특급>은 작년 한 해 '숨어서 듣는 명곡'을 특집으로 한 <숨듣명>을 1년여간 계획하며, 그들의 곡을 직접 소비했을 X세대를 비롯하며 MZ세대에겐 새로 왔을 아이돌 가수들의 그간 활동 연대기를 특별하게 주목했다.
지금으로 치면 갓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 어린 나이에 데뷔했던 이들이 어른들의 틈바구니 안에서 '완벽'하게 보이는 가수가 되기 위해 치열했던 이야기, 각 그룹의 특색을 보이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던 이야기들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족사는 피하고, 다른 매체에서 다뤄졌던 일방적이고 일반적인 이야기들 대신 그들을 소비했던 추억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댓글'을 활용하고, 제작진들이 관찰하며 얻어낸 특색들로 인터뷰를 진행하니 <문명특급>은 다채로울 수밖에 없었고, <문명특급>에 인터뷰이로 등장한 가수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웃으며 자신들의 뜨거웠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토록 특별한 <문명특급>의 300만 뷰를 기록한 주인공은 바로 이번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의 사나이를 맡게 된 그룹 유키스(U-KISS)의 '수현'(신수현, 별명 수현oppa)다. '흔들리는 동공' 속에서 중심을 잡고 냅다 무릎을 꿇고 노래를 한 방송사고를 유연하게 대처한 가수로 유명했던 영상 속 주인공, '시끄러'와 '만만하니' 등의 유명한 숨듣명의 주인공인 유키스의 메인보컬, 수현의 등장은 반가웠다. 연예인의 외모로 친숙하고 순수하게 웃는 그의 모습과 말은 순식간의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 감기게 했다.(팬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나 또한 그런 수현에게 반해 수현oppa편을 자주 돌려봤었다. 인스타도 팔로우하여 인스타라이브도 챙겨보고, 인터뷰도 챙겨봤다. <문명특급> 속 순수한 수현의 모습만큼이나 몰랐던 수현의 인생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참 그가 이 시간까지 굳건히 '신수현'이란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옛날엔 그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음악방송 속 가수,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돌이었다면 이젠 나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화려함 속에서 빛나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컸어야 했던 속은 어땠을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고, 많은 사람들을 겪었어야 했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가 경이로워 졌다.
쉽게 뭣 하나 포기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그를 생각하면서 화려한 옷을 입은 그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고, <샛별다방>에서 미희에게 선물 받은 아빠 구두를 신은 수현의 큰 발을 보면서 어떤 구불구불한 길을 뛰고 걸었어야 했을지, 가늠조차 안 되는 그의 삶이 무릇 감히 그려졌다.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속 사나이는 곧 신수현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응원하는 작은 사람으로서,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가 주어질 수 있길 바랐다. 어쩌면 아이돌로서 살아갔어야 하는 수현이란 사람에게 쥐어지는 가사와 역할은 한정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홀연했던 사나이>의 노래와 이야기가 되는 대사를 들으면서 정말 좋은 극을 만났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에게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더 많은 세계가 있길 바란다.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구나!"
(꽃님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태일에게)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전 시즌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꿈도 경연 서바이벌이 되고 마는 예능과 생존만이 남은 한국 사회에서, 나는 어떤 꿈을 지녔단 이유만으로 단면으로만 남겨진 이들의 이름을 기억했다.
'무명'으로 지나친 배우들의 무대에서부터 언제서부터인가 '유가족'으로만 불려야 하는 어떤 사고의 피해자들, 그리고 '피해자'라고만 규정되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나조차도 마땅한 신분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설명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모두가 서로의 안녕을 묻듯,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샛별다방>처럼 시와 음악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와 시론(詩─詩論), 1952년)
♬ <우리들의 레드카펫> - 뮤지컬 <홀연했던 사나이> 중에서
♬ 아이유(IU) - 이름에게(Dear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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