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작위적인 어른들이 만들어 낸 성장사. 말이 돼?
진 빠지는 일이구나. 누군가의 고통을 보는 건 생각보다 되게 힘든 일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어디론가 달려갈 힘을 줄 줄 알았던 영화 <해피엔드>는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영화 <해피엔드>의 감독인 네오 소라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들인지도 몰랐다. 어쩌다 류이치 사카모토에 관한 글을 이어서 2편이나 쓰는 것 같지만, 감독 때문에 본 게 아니란 말씀.
스틸컷을 처음 봤을 때, 뉴진스의 <Ditto> 같은 감성인 줄 알았다. 뭔가 러브레터처럼 겨울 냄새나고, 애틋하고 막 몽글몽글한 느낌 말이다. 기대와 달리 <해피엔드>는 작열감이 느껴져서 고통스러운 영화였다.
'-통'의 유행 시대에 누군가의 고통을 보는 건 생각보다 되게 힘든 일이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상보다 더 치기 어리고, 갈등하고, 분노하고, 균열하는 그 시절에만 겪고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을 듣고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영화 속 주인공들보다 어른이 되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이건 그런 것과 다른 느낌이다. 나도 저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반항하기도 하고, 내 뜻과 다른 친구들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제도권에 함부로 덤비기도 하고, 물러나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다시 보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내 주변엔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말이 돼?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지는 선생님? 어른? 점거 농성을 다 들어주는 교장 선생님? 후반부에 조건을 걸었어도 어찌 됐든 들어주는 어른? 아르바이트 중인데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사장님? 심지어 그 멜로디에 울어주는 사장님이 있다고? 내가 겪은 세상에 그런 어른은 없었다. 자율 학습 시간에 존다고 뒤통수를 때리는 선생, 시험 시간에 다 풀고 잔다고 "XX 년아. 일어나!"라고 소리 지르며 분필 던지는 선생. 다른 학급 게시판에 잘못 올린 게시글을 옮겨달라고 하는 부탁에 귀찮아하다가 결국 제 고집에 몽둥이로 쉬는 시간 5분 동안 지칠 때까지 계속 때린 선생. 책임지기 싫어서 학급 내 따돌림을 모른 척하는 선생. 제대로 된 어른이 있었나?
코우가 장학금 합격증을 받던 순간에 흔들리던 식당 안에 주홍빛 삼각뿔 조명을 잡아주던 손도 어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인지 영화 <해피엔드> 속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삐딱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기억에 강력히 남은 장면은 두 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시아권에서 가장 홀대받을지 모르는 흑인 포지션의 친구에게 발포하듯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 (마치 확인 사살하듯 한 번 더 쏘는 게 진심, 진짜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하나는 아까 말한 식당에서 조명을 잡아주던 손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환상 속의 어른들, 해결사 선수 입장이요-.
영화 <해피엔드>의 어른들은 너무 착하다. 지나칠 정도로. 영화 <해피엔드>는 더 적나라하게 마음을 긁어줄 줄 알았지만, 현실에 부재한 어른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오히려 영화를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영화 내 갈등을 유도하는 과도한 규제 시스템 소재는 존재하면서, 결국 통제를 만들어 낸 어른들이 아이들의 이야길 들어주는 모습은 마치 금융사범이나 테러리스트를 잡는 만화나 영화에서 천재 해커가 선수 입장하는 것만 같았다. 이외에도 소리를 질러가며 싸우지만 결국 우퍼를 옮기는 것을 기꺼이 돕는 주인공, 경찰에 연행되는 걸 그냥 보고 있는 땅에 발이 붙어버린 것만 같은 주인공.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주인공. 갑자기 나타나서 점거 농성 중인 친구들에게 김밥을 가져다주곤 사회를 비판할 때 들은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 어찌 흘러가는 모양새가 지진으로 균열은 일으켰지만, 주인공은 결국 죽지 않는다는 식의 균일한 레퍼토리를 그대로 답습한 것만 같은, 뻔한, 잡히지 않는 허상에 가까웠다.
현실은 어떠한가. 강자는 약자의 목소릴 들어주지 않는다. 강자, 부패한 권력, 잘못된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결국 비판하는 대상을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 약자의 몫이다. 영화 <해피엔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실제는 지진과 균열 뿐이다. 그 외엔 다 환상이다. 난 이 허구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교복 입을 때 본 영화 <우울한 청춘>이 실제 같았다.
너, 어쩌려고 그래?
그래. 솔직히 영화 보면서 이 말이 계속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코우가 엄마한테 편하고 살려고 한다는 장면에선 꽤 불효자인 나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유타가 퇴학할 땐 유타네 엄마처럼 흠씬 두들길 뻔했다. 영화 속 날카롭게 찌르는 말들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고통스러운데, 흐름은 환상의 나라 ○○월드 저리 가라다.
치기(稚氣)는 이제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는다.
유타는 이제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코우는 유타의 주변을 맴돌지 않는다. 둘은 더 이상 애쓰지 않는다. 코우는 제도를 바꾸고 싶어 했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걸 바란 게 아니었다. 소속과 증명을 나타낸 교복을 입은 코우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제일 바뀌지 않을 것 같았지만, 제일 많이 바뀐 것 같은 유타. 유타도 이런 결말을 바랐을까?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애틋함보다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둘의 우정이 계속되지 못할 거란 걱정이 아닌, 유타의 미래가.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진이 다 빠졌다. 내 미래도 불분명하고 여전히 불안한데, 해결될 건 해결되고, 잘못될 건 잘못되는 모습이 아주 잘 맞물려 돌아간 영화를 보니 기운이 빠졌다. 실제였더라면 어른은 책임지지 않고, 교장 선생님은 초밥 도시락이고 뭐고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심지어 깃발 뒤에서 소변보는 모멸감도 견뎠잖아. 아! 내가 지금 교장한테 너무 이입하나? 아니. 무엇보다 차를 다섯이 세울 수 있었을까. 아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는 지금 괜찮은 걸까. 너, 어쩌려고 그래?
아! 참! 정말 후반부에 나오는 노래는 정말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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