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명의 무용수, 마흔 개의 자모
언어는 문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언어는 신체를 벗어날 수 있는가? 신체는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가? 완성된 작품은 낱장으로 찢어질 수 있는가? 몸으로? 몸으로 문장들을 더 잘게 쪼갤 수 있는가? 여기서 더 쪼개질 수 있는가?
"삐빅. 그렇다. 이게 무용 <파이브 바이브>다."
사실 나는 <파이브 바이브>의 음악 하나를 들으려고 국립극장에 갔다. '무용 공연에 음악을 들으러 간다니 무슨 소리야?' 할 수 있지만. 이 예고편을 보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통과 현대가 유리된 게 아니잖아요.
현대적인 흐름이지만
무대 어느 한쪽에서 전통이 계속 진행되도록 했어요."
- 안무가 예효승, 프리뷰 인터뷰 중 음악에 관하여
국립무용단의 <파이브 파이브>는 권에서 장으로, 장에서 단으로, 단에서 구절로, 절에서 단어로, 단어는 자모 40개로 잘게 잘게 더 잘게 쪼갰다.
뜨겁고 메마른 사막, 오아시스, 선인장에 담긴 물조차 이곳엔 없다. 태초의 인간을 표현한 듯 무대 위엔 무용수만 덩그러니 남는다. 물 한 모금 허락되지 않는 나라에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걸어온다. 불현듯 뜨거운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영화 <매드맥스>와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을 섞어놓은 듯한 극악한 환경에서의 서바이벌. 생존보단 항거에 가까운 개별적 언어. 두터운 형체의 남성이 질문하듯 문을 두드린다. 쿵.쿵.쿵 대금과 EDM이 부딪히며 끊임없이 '저건 뭐야?'라고 묻고, 갈증을 만들어 낸다.
<파이브 바이브>의 첫 번째 새벽을 알리는 태평소의 소리가 들린다. 심장 박동의 EDM이 잠든 이들을 깨운다. 프로시니엄 오른편에서 사람의 형체를 한 것이 진득하게 바닥으로 굴러온다.
<파이브 바이브>의 시작이다. 무엇도 담겨 있지 않은 눈빛의 무용수는 앞 객석을 응시하며 구른다. 비로소 춤판이 시작된 느낌이다.
"국립무용단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면이에요.
63년 역사를 거쳐 지금이 있다는 거죠.
거꾸로 현대에서 전통으로 가는 시간성을 표현해 봤어요.
단원들의 개별적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려고 대놓고 런웨이를 가져왔어요.
역사가 바닥에서 천천히 흐르는 가운데
한 명씩 자신만만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거죠."
- 안무가 예효승, 프리뷰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March[maːrʧ]
1. (대열을 짓고) 행진하다 2. 진행되다 3. 행진시키다 4. 억지로 걷게 하다.
아크로 바틱에 준하는 몸짓을 하는 무용수들, 무대에 고꾸라지듯 텅!텅! 떨어지는 기이함과 냉소적임. 마치 어렸을 때 본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 오프닝 같았다.
신체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던 때에 본 피나 바우쉬의 영상이었다. 직관적이기보단 기이하고, 온화하기보 컨템퍼러리 그 자체였던 피나 바우쉬 영상은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줬다. 그 충격만큼이나 이번 국립무용단의 <파이브 바이브>는 무용이 언어로서 어디까지 깊이가 있는지 알려주었다.
당했다. 관객으로서 보는 내내 끈적한 땀이 흐르는 무대 위 무용수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웠다. 만일 이것까지 안무가와 연출가가 의도한 거라면 난 완벽히 당했다. 에어컨에 으슬으슬할 정도로 뽀송한 내가 이상했다. 엔터테인먼트 안에 무용이 포함되긴 하지만, 즐거움으로서의 엔터테인먼트보다는 언어로서 동작하는 것만 같았다.
"저는 이게 국립무용단의 또 다른 장르가 되길 바라요.
'이건 뭐지?' 했을 때 그냥 '파이브 바이브'야. 했으면 싶어요.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똑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거라는 기대합니다.
사실 해보지 않은 작업 방식이라 어려운 도전인데,
왠지 모르게 끌리고 즐거워요.
단원들과 사고 한번 쳐보려고요."
- 안무가 예효승
국립무용단의 <파이브 바이브는>는 신체란 언어 - 태초의 언어에 신체를 끌고 들어가는 것만 같다. 뭘 표현하려고 애쓰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번 <파이브 바이브>를 보고 확실하게 느낀다.
이제 더 이상 '한국무용이란 무엇인가요' '한국무용다운 동작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국공립기관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건 아니라고. 한국무용도 현대무용처럼 그냥 무용일 뿐이라고. 수어처럼, 춤, 언어, 몸의 말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파이브 바이브>는 60분 내내 이야기한다.
음악도 언어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음악에서도 국립무용단의 <파이브 바이브>만큼만 다가왔으면 좋겠다. 같은 '한국'이란 요소가 들어가는데, 그 상징성과 활용도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파이브 바이브>는 한 놈만 팬다. 쪼개지고, 부서지는 것에만 집착한다. 한국무용의 에너지를 가지고 가되, '한국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응시한다. 그러한 태도가 한국이란 키워드를 다루는 예술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차기작이 나온 이상, 이전 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둘 중에 뭐가 나아? 라고 한다면, 고를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고야 만다. 둘의 추구미는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큰 기대가 들었던 오프닝에서 런웨이는 말을 안 할 수 없겠다.
<파이브 바이브>의 서두에서 무대를 프리뷰하듯 보인 영상은 이색적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무대 위의 런웨이 형태는, 이미 이전 작 <미인>에서 한 번 보여준 모습이기에 한껏 고취됐던 기대감이 낮아져 아쉬웠다.
개별적인 작품으로 놓고 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거다. 아마도 작품으로서 개별적으로 존재하기에 선택한 시도였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나는 <파이브 바이브>를 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이 사고는 성공한 것 아닐까?
<파이브 바이브>는 남성춤 특유의 낮고 깊은 중심, 절제된 움직임 속에서 느껴지는 폭발력, 군무 속 파편처럼 튀어나오는 개별성이 긴장감을 강화한다. 강렬함 속 내재한 섬세함으로 한국 남자춤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파이브 바이브>는 전통을 발 딛고 있지만 그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 있지만 그 해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 국립무용단 <파이브 바이브> 프로그램 북 '작품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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