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 : 관객 코멘터리
뮤지컬 <일 테노레>의 소리를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프롤로그의 음악을 들으면서부터다. 뮤지컬 <일 테노레>의 프롤로그에서 반도네온의 공기가 들렸다. 이후로 나는 내가 한 번도 더뎌본 적 없는 음악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떠났다..
'이건 내가 윌과 휴에게서 기대한 소리가 아닌데….' <일 테노레>의 첫인상이었다. 윌과 휴가 비극적인 이야기를?···. 내게 윌과 휴는 따뜻한 재즈 감성의 극을 쓰는 극작가였다. 뮤지컬 <일 테노레>의 프롤로그는 달랐다. 서늘하고, 침울한 소리가 공연장을 울렸다.
윌과 휴를 알게 된 건 <열혈사제>의 전성우 배우님을 파다가 알게 됐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지금은 토니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졌지만, 그때도 매니아들과 뮤지컬 좀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나는 윌과 휴의 세계로, 윌과 휴가 만든 음악에 빠졌다. 재즈, LP, 제주.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이 좋아하는 것투성이인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라면, 학생 공연도 마다치 않고 찾아갔다. 그렇게 좋아한 뮤지컬 제작자인 윌과 휴의 초연 작품이라니! 놓칠 수 없다며 부랴부랴 토월극장으로 향했다.
'뭐지? 선원에 관한 건가...? 이 뮤지컬 주제는 테너 아닌가...' 아리송한 포토존을 지나치고 자리에 앉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다 음악에 빠진다. '아..아니! 이건!' 그래. 반도네온이다! 반도네온이다...! 이 소리 하나를 듣기 위해서, 지방을 오갈 정도로 사랑해 마지 못하는 악기의 소리! 나는 한껏 귀가 쫑긋해진 채로 무대를 바라본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나는 극작가 윌 애런슨이 올려준 프롤로그를 듣고 또 듣는다. 주변에 음악을 전공한다는 친구들에게 두 번씩 묻는다. "이거 무슨 악기 소리야?" 하면, 친구들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냥 스트링(현악기) 소리 같은데…."
"이거 반도네온 소리 아니야?"
"그냥 스트링 여러 대 소리 같은데... 흠..."
"아니야! 이게 어떻게 스트링 사운드야! 스트링이면 무슨 스트링! 바이올린에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 바이올린이 여러 대로 연주하면 이런 소리가 나? 아니야! 이건 한 대 같다고! 첼로 아닐까? 좀 중후해…. 아니야 아니야. 잘 들어봐봐. 이거 관 소리가 나. 공기가 들어갔다가 나오는 소리 있잖아. 반도네온에서 주름상자라고 있는데…."
"그래그래. 한 번더 들어보자. 어느 구간이라고?"
"여기, 여기!"
이 정도면 반친자(반도네온에 미친 자)다. 프롤로그 음악을 들으러, 윌의 홈페이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들른다. 뮤지컬 <일 테노레>를 아는 자, 음악 전공인 자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하루에 5시간 넘도록 떠들어도 지치지 않는다. 음악 얘기가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오케스트라에 관한 입문서란 입문서는 다 보았다. 호기심 가는 단어 하나라도 보이면, 유아 도서도 냉큼 샀다. 지휘는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몰래몰래 지휘도 해본다.
'나…. 진짜 진짜. <일 테노레>를 알고 싶어! 음악적으로!' 이렇게 설레어 본 적이 없었다. 뭉클하다. 노래가 너무 예쁘고, 이렇게 음악에 즐거워 볼 수가 있나 싶다. 그간 웃을 일 없던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 변화 덕분일까.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과 아는 동생들은 기꺼이 나의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때론 화상통화로, 때론 직접 만나 과외를 해주었다. 오직 <일 테노레>만을 위한 과외가 시작되었다.
'나…. 어쩜 좋지?... 막힌다.' 음악 단어들과 해석을 늘어놓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나를 두곤, 선생님은 쓴소리도 서슴없이 했다. 지칠 때면 친구들은 동생이고 뭐고 떠나서 어깨를 찰싹!하곤 때렸다. "음악적으로 분석해야지 근거가 만들어지지!"
"이거 바흐 맞지? 바흐 선율 맞지?"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잘 들어봐! 바흐라니까! 이스터에그! 몰라?!"
"그게 뭔데요."
"이거 봐봐. 진연이가 이렇게 저렇게 했어. 그런데 바흐도 진연이와 이런 것들이 연관되어 있지?"
"설마요. 작곡가가 거기까지 생각했을까요? 게다가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너무 짧아요."
"야. 장난해? 윌과 휴야."
천국이 있다면, 거긴 분명 윌이 만든 음악이 있는 세상일 것이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음악을 주의 깊게 들었던 적은. 나는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해 큰 단위까지 넘나들며 음악전공생인 동생을 괴롭혔다. 어떻게든 근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연결시키면서.
"이건 그냥. 기법이에요. 기법"
"아... 트레몰로는.. 그냥... 기법. 그럼, 이 '둥둥! 둥! 둥!'하는 심장박동 소리 같은 소리는 콘트라베이스 같은데, 심장박동은 몇 박이야?"
"심장 박동에는 박자가 없어요. 너무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내가 지금 깊게 들어가고 있어?"
"무척... 게다가 물어보는 건 대학원생 심화 수준인데, 설명은 탱로그처럼 하길 바라면 어떡해요!!!"
"그럼 어떡해!!! 못 알아듣겠는데! 네가 좀 도와줘봐봐! 너 똑똑하잖아!"
과외도 제법 해온 동생은 답답해 죽으려 했다. '이 기법은 뭐야?' '이 선율은 타당한 근거가 될까?' '설명을 어떻게 하면 쉽게 할까?' 동생은 글맘다 각주를 달길 바랐지만, 어떤 음악적 설명 없이도 내가 윌의 음악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듯이 쉽고 친절하게 읽히길 바랐다.
D 완전 좋았지! 진연이 폭탄으로 암살하려는 것을 알았을 때, 스파이 영화에서 나오는 고전적 사운드나. 곳곳에 이스터에그처럼 배치된 사운드들이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기분이었어. 왠지 '꿈의 무게'를 처음 썼을 것 같아. 그러고 아리아1이 나오는거지.
J '아리아1 : 그리하여 사랑이여'는 정말 인류 역대의 극 중 음악이야. 아니. 어떻게 이렇게 한국 가곡처럼 쓸 수 있지?
D, J 그냥. 윌과 휴가 윌과 휴 했다.
D 난 그래서 더 좋았어. 윌과 휴가 윌과 휴해서. 다만 삼중창 부분은 좀 아쉬웠어. 수한에게 삼중창의 비중을 줄만큼의 서사가 부족했달까.
J 나도 동의해. 좀 더 깊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은 데 말이야.
뮤지컬 <일 테노레>가 내게 음악으로 더 특별했던 이유는 사랑해 마지않는 현악기가 엄청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18인조 오케스트라에서 현악기가 12인조까지나 쓰였다. 이례적인 구성에 우리 모두 기대를 했지만 저마다 공연장에서 들은 느낌은 크게 달랐다.
운이 좋게도 무대와 가까운 1층에서 처음 본 나의 경우 현악기가 주는 중압감에 압도되는 느낌마저 들었지만, 2층에서 처음 본 J의 경우 스트링이 군집적으로 가는 느낌이라 사운드만 커진 느낌을 받았다.
바이올린에서 반도네온의 숨소리마저 들렸다고 착각했던 나였기에 J의 의견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둘의 객석의 위치를 보니, 나는 좀 더 오케스트라 쪽에 가까웠고, J는 스피커 쪽에 가까웠다. 그러니 리버브가 걸린 인공적인 사운드를 들었던 것이다. J는 특히나 바이올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가닉한(Ogarnic,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소리를 기대했는데, 그런 소리가 사라져서 많이 아쉬워했다.
<일 테노레>가 처음 올라간 CJ 토월극장과 재연의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 모두 음향에 있어선 악명 높기로 유명한 극장이다. 특히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의 경우엔, 수정이 불가능한 레플리카 라이센스극이 올라오면 관객들은 사운드를 가장 먼저 걱정한다. 극장의 객석 수만큼 뻗어나가는 시원시원한 음향이 아닌, 어딘가 먹먹한 음향이 들린다. 강렬한 음악을 느끼러 온 관객들은 짜게 식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 테노레>는 레플리카를 따지는 라이센스 뮤지컬이 아니다. 음향에 있어서도 완전 우리나라 맞춤형이라고 볼 수 있는 사운드였다.
자체 마지막 공연도 포함하여 내게 <일 테노레>는 이보다 완벽한 사운드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기에 모두가 같은 사운드 경험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컸다. J에게 윌과 휴가 올린 사이트 주소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자 J는 마구 화를 냈다. 이야기도 사운드도 모두 이게 더 낫지 않냐며. (옳소!) 나 또한 우리의 윌은 일부러 건조한 바이올린의 소리를 들려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는 공연장의 물리적 한계가 있었던 거로 보인다. 자연스러운 소리로 메워질 수 있는 외국의 오케스트라 구조가 있는 브로드웨이 구조가 아닌 형편의 구조다 보니 생긴 사운드 설계 같았다. 객석의 끝까지 소리를 다다르게 하자니 사운드를 증폭시킬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의 공연이 아니다 보니 물리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생각보다 자유도가 높지 않아 MR처럼 일관된 소리를 줄 수 없어 도제식 방법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음악 전공자인 J의 귀엔 현악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촉촉한 본래의 사운드가 오케스트라만큼 들리지 않고, 사운드만 커져 하나의 뭉텅이처럼 들린 것이다.
과연 공연장이 작아진다면 오가닉한 본래의 현악 사운드가 저 먼 관객들에게도 찌르르르 다가갈까?
왜 생각을 못 했을까. 그저 음악을 즐기기 위해 내가 있는 곳에서 그냥 손으로 표현하면 되는 것을 나는 흉내도 내보인 적 없었다. 왜일까. 부끄러워서? 나는 <일 테노레>를 파기로 한 후 뭐라도 된 것처럼 친구들을 따라 음악을 따라 지휘했다. 표정이 섬세해지고 두 팔은 날개가 된 듯이 러프하게 펼쳐지기도 단단해지기도 했다. 이런 재밌는 일을 지휘자 혼자만이 하다니... 부담감과 책임감, 그리고 따르는 보람참이 남다를 듯 했다. 음악에 관해 인터뷰한 윌의 인터뷰에서 음악적 교육이 한정된 사람에게만 열려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을 너무 좋아한다. 난 그래서 윌과 휴가 참 좋다. 그 간극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어느 날, 우연히 한국 뮤지컬 시상식에서 그들의 수상소감을 들은 적이 있다. 뮤지컬도 뭣도 모르는 시기에 잠깐 알고리즘을 타 우연히 본 영상 속에 그들은 매우 수줍어했다. 모두가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보러와 주세요같은 상투적인 말 대신, 자신들을 책망하며 관객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은 느낌 뉘앙스의 말들을 하는 창작진을 보면서 의아했다. 저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박천휴) 정말로 이렇게 따뜻한 관심. 관객 여러분 너무 관심 드려요. 저희가 작년 겨울에 초연을 했는데. 너무나 추운데 보러와 주시는데. 과연. 이 공연이 여러분을 이렇게 고생스럽게 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임감이 느껴졌거든요. 목도리 두르시고, 모자쓰시고 오시는 분들 보면서 스스로 민망하기도 했고, '더 잘 쓸걸. 더 노력할걸...' 후회되기도 했고. 정말 관객 여러분들 덕분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창작자로서 책임감 가지고 가짜 아니고 진짜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2018.01.22. 제2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 대본 작사상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수상소감 중에서
여러모로 겹경사가 끊임없이 안과 밖으로 나는 여름날이 이었다. 훅훅 찌는 여름 더위도, 음악을 들으면 마치 겨울 한복판판에서 진연이가 쓴 글을 전해 받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의 입맞춤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들마다의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나는 <일 테노레> 속 캐릭터들마다의 꿈을 찾아 새로운 힘을 얻는다.
내겐 <일 테노레>가 그랬다. <일 테노레> 음악을 들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쫓아가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내 안에 있던 경계를 넘어서는 일도 했다. 지금도 나는 감히 지휘를 배워본 적 없으면서 윌과 휴가 만들어 준 세계를 헤집어 나가듯 지휘한다. 눈을 감고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에게 더 어떤 감정이 올라와야 하는지 눈빛을 주고 받는다. 뭐라도 된 것처럼 꿈을 꾸는 지금 이 시간이 내게 얼마나 더 있을까. <일 테노레>는 내게 뮤지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선이처럼, 또 다른 꿈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진연의 길을 걷는 것처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수한이처럼 사랑을 알려준 극이다. 나는 아직도 거센 비가 내린 뒤에 오는 비내음과 눈부신 신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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