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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un 09. 2023

시니어 아파트의 할머니들은

새삼 할머니들이 좋아진 이유는

시니어아파트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3년째다.


팬데믹 기간에 좀 쉬고 싶어서 잠시 직장을 떠났다. 한량 노릇을 하며 제대로 쉬어볼까 했는데 웬걸, 시어머니가 눈에 걸리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밥을 좀 해드리려는 착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가사 도우미다. (참고로, 시어머니는 손수 밥을 잘 챙겨드시지 않고, 음식을 거의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 이유로 시니어아파트를 주말마다 가게 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주말마다 시니어아파트를 간다. (또,  참고로 말하자면,  며느리가 효심이 지극해서가 아니다. 그 넘의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사는 시니어 아파트는 건물전체가 한인만 거주하는 아파트다. 시카고에서는 한인 역사에도 남을만치 오래된 연장자 아파트다.


그런데 거주자의 90%가 싱글 할머니들이다. 할아버지들은 그야말로 보기 힘들 정도다. 그것도 대개가 싱글이신 분들이다. 우스운 이야기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비중이 격차가 있다 보니 할아버지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특히 자동차를 소유한 분은 인기최고다.^


그건 그렇고, 시니어아파트를 꾸준히 들락거리다 보니, 할머니들 개인뿐 아니라 그들의 삶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시니어아파트의 방문들은 대개 열어놓고 지낸다. 모두가 한인이고, 시큐리티가 잘 되어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말하자면, 시니어 동네다. 아파트의 주인장이 되는 할머니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한, 최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몇 호에 누가 사는지, 개인적인 애로사항뿐 아니라 구체적인 가족상황까지 파악하고 있다.


가령, 몇 호의 할머니는 혼자다. 가족들이 모두 다른 주에 살고 있다. 그래서 외롭다. 어떤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가까이 살아도 찾아오는 자식이 없어서다. 어떤 할머니는 약간의 치매끼가 있어 아무  집이나 불쑥 열고 들어온다. (시어머니의 문도 몇 번이나 불쑥 열고 들어옴) 또 어떤 할머니는 효심이 지극한 딸. 아들이 일곱이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 옆집 옆집 할머니는 뒷집 싱글 할아버지와 연애 중이다.^


심지어는 아파트에 낯선 얼굴이 나타나면 그 인물이 누군지 금세 알게 된다. 신기하다. 처음에 내가 아파트에 들락거리기 시작했을 때다. 할머니들의 경계심이 대단했다.^ 어떤 할머니는 아래, 위로 쫘~악 훑으며 째려보았다. 당황할 정도였다. 할머니들의 눈길이 누그러진 것은 내가 몇 호실에 사는 권사님의 며느리로 신분이 확인된 후부터다.


그건 그렇고, 이런 식으로, 시니어 아파트의 할머니들은 시골동네처럼 이웃집 생활을 꾀고 있다. 내가 이런 정보를 가지게 된 것도 누가 알려준 것은 아니다. 어째 시니어아파트를 들락거리다 보니 알게 된 사실들이다. 시어머니에게 물어서 알게 된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할머니들은 홀로 살지만 따지고 보면,  큰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있으면서 함께하는 큰집 같은 곳이다. 이들은 교회도 함께 다닌다. 매일 서로 들여다보고, 외로움을 다독이고, 음식도 나누어 먹는다. 자식에게 말 못 할 속내도 털어놓는다. 주말이면 맥도널드에도 같이 간다. 모여서 수다도 마냥 떨고, 샤핑도 한다.


내가 30,40대까지 마구 해댔던 말이 있다. 나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 듯 시건방을 떨었던 때다. ‘어? 저 할머니들 왜 저래?'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식사 때면 밥알을 좀 흘리기도 하고, 걸음걸이도 느리다. 뚝하면 엉뚱한 말을 던지고, 한 말을 또 또 하고, 묻는 질문에 자주 동문서답하고… 첨 보는 사람(나)에게 능청스럽게 말을 잘 걸고, 때로는 실례가 될 만큼 디테일한 질문을 마구마구 던지는 일 등등이다.^ 이제는 이런 일에 좀 익숙해졌다.


'저 할머니들 왜 저러는 거야?! 는 사실상, 할머니가 되면 '그러는 거야'라고 시니어 아파트의 할머니들은 행동으로 딱 부러지게 말해준다. '창피할 일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거 아니겠어? 야!'라고.

시니어아파트의 할머니들이 점점 친근해진다. 게다가 귀여웁기까지 한다.


근데.. 요즘,  나도 조금씩 ‘그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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