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느긋한 직장생활에 찾아온 칼바람
어느 날,
나의 직속 매니저인, 선배 C여사가 울그락 푸르락 상기된 얼굴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나에게 말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됐어! 우리는(선배와 나) 미국 매니저가 이끄는 팀으로 합류한데!"
"정말?!"
마침내 부사장님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한국부 쉬핑 부서의 최고참인 C선배의 다급해진 얼굴색을 살피며, "음, 드디어 우리에게 폭풍이 몰아치고 있군"
하고 나는 시큰둥해져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한인 2세 분이 사장님이다. 흑인 여성들의 헤어제품과 남성 수염(Beard) 전용 제품들을 자체 생산. 판매하는 회사다. 유럽을 중시해서 여러 나라와 미국 내에 있는 대형마트를 비롯, 크고 작은 한인 미용업계에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10여 년 전에 내가 회사를 입사했을 당시에는 총직원이 60명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한인 미용업계 중에서도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회사의 어카운팅 (재무) 부서와, 한국부 세일즈팀, 쉬핑팀, 공장의 매니저만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전역에 퍼져있는 한인 미용업계를 타깃으로 하는 한인세일즈팀이 유일한 회사의 주 수입원이었다. 이때만 해도 해외 고객은 한 두 곳 정도였고, 미국 내의 많은 마켓을 고객으로 끌어들이진 못했다.
세일즈팀 다음으로 회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서는 쉬핑팀이다. 일 년 선배인 C 여사를 주축으로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직원들로 이루어졌다. 쉬핑 팀의 주 업무는 한인세일즈팀의 오더를 미 전역으로 보내는 일이다. 제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내 보내는 일뿐만 아니라 하루 세일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는 사장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세일팀과 쉬핑팀은 회사의 강력한 한 팀이다.
회사의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직원들의 수도 늘어났다. 매니지먼트는 앞날의 비전과 회사 성장에 맞추어 공간 확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당시의 회사 규모보다 몇 배나 큰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회사다.
회사가 이전했을 당시만 해도 건물 공간의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직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많은 오피스룸을 다 채워갈 수 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사장님은 미래를 예견하고 배짱 있게 큰 건물을 매입한 것이다.
처음에는 선배 C 여사가 매니저로 구성된 쉬핑팀은 미국 내 마켓과 해외 고객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인 여직원 2명이 쉬핑팀으로 조인하게 되면서 조금씩 팀 확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한인세일팀이 막강함에 따라 쉬핑 부서도 회사의 중요한 위치로 부상했다. 그에 반해 한두 명에 불과한 미국 세일팀은 실적이 초보 수준이었다.
그렇게 회사는 고공 성장을 계속하다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미국 내 흑인 여성 헤어 제품에 대한 시장의 취향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한인마켓을 겨냥한 기존의 제품 판매량은 부쩍 줄어들게 되었다.
시대는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상황이란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진리처럼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와 속삭였다. "이제, 변화가 일어날 때야”라고.
곧 회사는 기존의 제품을 시장의 성향에 맞게 재빠르게 변모시키는 등 , 가능성이 있는 여성 화장품과 남성 전용 미용 제품에 관련된 미국 내 작은 업체들을 연이어 인수하게 되었다.
미국 마켓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전문 세일즈맨들을 고용하고, 각 부서마다 고급인력을 투입했다. 해외 수출업무와 미국 내의 크고 작은 마트로 까지 새로운 제품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곧 회사는 성공적인 변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인 세일즈팀은 실적이 저조함에 따라 팀 멤버들의 일부는 다른 부서로의 이동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돕던 한인고객팀인 우리 쉬핑 부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배와 나만 남은 채 나머지 여직원들은 재무팀이나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사태가 일어났다.
사장님의 방침은 누구도 해고 없이 적정 부서로 투입시킨다는 의리로 직원들을 배려했다. 한국 직원들에 대한 밥벌이는 본인이 책임지고 껴안고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회사의 목표는 명실공히 미국 내의 중소기업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혀나가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인이 주도가 된 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주된 경영권은 (각 부서의 부사장과 매니저급) 미국인이 맡는 회사로 전환시키는 것이 회사의 최종적인 취지요 비전이 되었다.
회사 벌이의 주된 역할을 해왔던 한인세일팀이 뒤로 밀려났다. 미국 내에서 점차 세일 파워를 보여주기 시작한 미국인 세일즈팀들이 선두로 나서면서 회사 내 파워쉽의 주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가 나와 선배가 어쩔 수 없이 미국 고객팀으로 조인하게 된 계기가 된 사연이다.
회사는 다른 부서에서 세일 매니저로 경력이 풍부한 한 여직원을 매니저로 지목하게 되었다. 이전에 회사의 쉬핑팀의 주도가 되었던 우리가 미국 매니저를 앞세운 팀으로 들어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10년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팀 매니저가 이끄는 팀으로 조인하는 일이란 다시 경력을 쌓는 일처럼 새로운 것이었다. 게다가 "경사 났네, 회사 일인데 뭐" 이런 식으로 받아들일 만큼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변화는 회사로서는 엄청난 수익임은 분명한 일이었지만 , 우리에겐 확실히 불편한 일이었다.
선배와 나의 주 업무는 이전처럼 한인세일즈팀을 돕는다. 업무는 독자적인 자율권을 갖는다. 매니저의 간여를 전혀 받지 않는다. 전체적인 미팅에 참여하는 일과 휴가 같은 사소한 결정권에 대해서는 미국 매니저를 따라 주어라는 권고가 전해졌다.
새 매니저는 50대 중반의 여사로 매일 화려한 액세서리와 눈에 띄는 원색 의상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세련되고 예쁜 얼굴이지만 덩치가 건장한 남자만 하다. 자기 말로는 한때 200파운드가 넘는 엄청난 뚱보였다고 하면서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피나는 다이어트와의 투쟁으로 지금은 몸이 반쪽이 될 정도로 날씬해졌다.
이탈리아 태생이라 기가 세고 다혈질에 말이 많다. 목소리도 무지 크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다. 반면, 애교도 많고 넉살도 좋아 보인다. 한번 웃기 시작하면 뒤로 넘어갈 정도로 크게, 길~게 웃는다. 이런 성격이 어떤 땐 좋은 것 같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야한 농담도 스스럼없이 심심하면 해댄다. 그녀의 사람들인 젊은 아씨들은 이런 농담이 시작되면 깔깔거리고 뒤로 넘어갈 듯 좋아라 한다. 그 맛에 하는 것 같다. 시끄럽지만 그 덩치에도 제법 어울리는 애교와 명랑한 성격 때문에 가끔은 울컥하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사장님이 그녀를 매니저로 지목했다는 말도 떠돌았다. 참고로, 사장님은 좀 떠들썩하고 유난히 외향적인 사람을 좋아하기에 그럴듯한 말이다.
왈가닥 새 매니저는 곧 업무를 시작하자, 경력이나 일에 대해서 한참 선배인 우리 둘(선배와 나)에 대한 칼날을 들이대듯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만만하지 않은 우리 두 사람에게 날을 세우며 사소한 의견 차이로 부딪히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담당 직원이 그만두었다고 해외 오더 쉬핑 업무를 나에게 맡기더니 자기 방식을 내세우며 고집을 부리는 일로 우리를 흔드는 일이 일쑤였다. 게다가 매주마다 미팅을 한답시고 업무 보고를 작성하게 하고 학생들처럼 발표하게 했다.
10년이 넘게 누구의 간여도 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해 오던 업무였다. 안 하던 업무보고서를 갑자기 작성하려니 성가신 데다 일이 더 늘어난 듯 업무 가중이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미팅을 너무 좋아했다. “미팅! 미팅 있어!”하며 그놈의 미팅 핑계를 대며 수시로 우리를 끌어들이려 애를 썼다.
하루아침에, 10여 년 동안 바람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내 직장생활에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회사는 단숨에 200명이 넘는 중소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가장 큰 타격의 대상이 된 선배와 나는 서로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장님은 “어허~두 분이 조금은 참고 양보하세요 “라는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를 그 말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 복잡 미묘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느꼈던 한 가지는 “ 줄을 잘못 섰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쉬핑 부서로 들어온 것이 잘못이다라는 뜻이다.
선배와 나만 제외하고 다른 한인 여직원들의 자리는 회사의 성장과는 어떠한 울림도, 변동도 없이 그대로 이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이란 그간 한 회사에서 쌓아온 경력 다 때려치우고 이 중년의 나이에 뛰쳐나가? 말까? 새로운 일을 시작해 다시 커리어를 쌓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보다 훨씬 경력이 낮은 왈가닥 매니저를 모시고 일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스트레스로 한동안 잠을 설쳐야 했다.
한국부 매니저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선배는 물론, “은퇴는 이 직장에서!”라고 장담했던 나는 두 개의 카드를 놓고 얼마간 고심했다.
포기냐?
버티냐?
그것이 문제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이따위 회오리바람에 절대 쓰러질 순 없지! “
“십 년 공든 탑이 어딘데?!”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지금만큼 베네핏을 받겠어?" “ 사장님처럼 인정 많은 보스를 또 만날 수가 있겠냐고?!”
이런 몇 마디를 속으로 되뇌며 무슨 대단한 결정을 내린 양 소리쳤다.
"그래, 결정했어! 버틴다고!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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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하이 힐을 신고 출근한다" 매거진은 저의 직장생활을 나눌 매거진입니다.
편안한 플랫 슈즈 (flat shoes) 집어던지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면서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직장에서의 도약을 의미하는 뜻으로 정한 타이틀입니다.
12년째 한 직장에서 일해 오면서 똑같은 일에 만성이 될 정도로 나태해지고 지루해질 무렵, 1여 년 전에 회사에 불어닥친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스토리로 시작합니다.
이 매거진은 그때부터 모아 놓은 글과
미국에서의 저의 직장생활과 직원 문화, 그 속의 사람들에 얽힌 에피소드들로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