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생각 대신 삽을 듭니다

by 혜 HYE



'꽃집 오픈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인데 생각이 많아집니다. 과연 누구라도 올까?부터 시작하여,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왜 생각이 많아질까를 생각하니, 뭐든 혼자 하는 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의존한다는 의미라기 보단 오랜 회사 생활로 협업이 특기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는 물품을 구매하는 곳이 따로, 판매하는 곳이 따로, 기획하는 곳이 따로, 자금을 관리하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그만큼의 규모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분업화되고 협업이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비교적 명확합니다. 출근 후 컴퓨터를 켜면 오늘 처리해야 하는 일들로 압도됩니다.


반면 자영업자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합니다. 운용의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죠. 모든 일상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업무적인 부분까지 혼자 결정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걸 조금씩 실감하는 중입니다. 회사를 다닐 땐 해야 할 일이 명확 했고 주어진 R&R (roles and resposiblilty)에 맞게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면 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모두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고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럴 땐 생각을 멈추고 우선 노트북이라도 들고 일터나 근처 카페로 나가야 합니다.


어제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오픈 행사 때 조화로 포토존 장식을 하고, 방문객들이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주면 한 송이 꽃다발을 주는 그런 행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화 장식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생각했던 거보다 퀄리티가 떨어졌습니다. 레퍼런스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계획과는 다르게 방향성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오히려 문제를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오전 시간 내내 방황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실로 갔습니다.


작업실에 가니 어제 사입해 놓은 꽃들이 더운 날씨에 시들시들 해져 있어 물을 먼저 갈아주었습니다. 꽃 냉장고가 없다는 건 또 다른 챌린지입니다. (이 부분은 작업실 운영을 해보면서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 나중에 다뤄볼 예정입니다.) 막연하게 뭔가가 머릿속에 있을 때 대충이라도 구현해 놓으면 부족한 수정만 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험이 없는 것들은 항상 생각 처럼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잡히는 대로 만들어 뒀던 아치를 바라봅니다. 그룹핑도 너무 잘 안되어있고, 꽃들도 너무 크고, 그린도 부족합니다. 디자인의 허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기다 역광이라 포토존이라고 하기엔 사람들 얼굴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위치를 바꿔야겠습니다. 애써 만든 아치를 해체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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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해야 할 점들을 고민하여 조금 더 개선된 결과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방망이를 깎는 노인 같은 심정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삽질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지점엔가 도달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이렇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덧 몸이 풀리고 멈춰있는 관성이 아닌 움직이고 있는 관성이 생깁니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집중하다 보면 언제 멈춰야 할지를 고민하는 순간이 옵니다. 어제 보다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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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삽질이라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삽을 들고 뙤약볕에 들어갑니다. 또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건 직장 생활로 얻은 특기인 성실은 성공의 열쇠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계속 추구하게 해주는 연료입니다. 커다란 한 번의 성공보다 여러 번의 잔잔한 성취가 더욱 간절해지는 요즘입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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