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꿈틀꿈틀] 1. 괴물들 - 클레어 데더러

우리 주변에 산재한 괴물들, 갈수록 깊어지는 팬의 딜레마

by 양지은

https://share.google/1Att7PV8idfJey7Js

<괴물들> – 예술과 사랑 사이에서

책 <괴물들>은 하미나 작가님의 추천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담아두고만 있었는데, 지금의 남자친구가 (아직 내 애인이 되기 전에) 추천해 주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영화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겐 하나의 습관이 있다. 마음에 드는 감독이나 작가를 만나면, 그 사람의 작품을 따라가듯 쭉 찾아보는 것이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가끔 불편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던 창작자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때. 문제적인 발언이나 범죄, 혹은 불편한 사생활로 이름이 오르내릴 때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 작품을 계속 소비해도 괜찮을까? 내가 감동했던 순간들을 다시 재평가해야 할까? 논란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면 어떡하지?”
바로 이 지점에서 <괴물들>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은 예술과 윤리, 소비와 사랑을 둘러싼 복잡한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간다. 무엇보다도 답을 단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을 껴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며, 내가 느낀 감정과 감동까지 죄책감으로 덮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
<괴물들>은 괴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들의 존재와 나의 감정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에 대한 책이지만, 동시에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더 근원적인 질문까지 나아간다. 고민하던 내 물음이 비로소 풀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판단이나 옳고 그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자체로 혼돈이자 감정의 세계라는 것을 알려준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내가 사랑한 작품과 그 창작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부딪힌 적이 있을 것이다. <괴물들>은 그 고민에 깔끔하고 명확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해답을 원한다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대신 말해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끝내 사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1.

나보코프는 사실 일종의 안티 몬스터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최악의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기꺼이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최악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도 연루되게 함으로써 자기만의 방법으로 유년기를 도둑맞았다는 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인지 이해하고 느끼게 만들었다.


2.

나는 괴물일까?

나는 괴물일까?

나는 괴물일까?

나는 괴물일까?

나는 괴물일까?

나는 이런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인간처럼 살면서 나쁜 행동들을 저질러 최소한의 내 몫을 채우기도 했다.

특정한 방식으로 나를 괴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3.

야망과 자신감은 한데 묶여 있다. 야망은 보통 남성이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언어 사용법에서 '야망'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단어다. 야망은 예술이라는 자물쇠를 여는 열쇠다. 야망이란 말은 이렇게 풀어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냥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야망은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여성에게 사용할 때는 경멸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망 있는 여자에게는 비난의 화살이 꽂히거나 의심의 눈길이 쏠린다.


4.

용기를 쥐어짜 내뱉었다. "나는요, 진짜 대단한 작품을 쓰고 싶거든요." 그는 계속 걸으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욕망 열차의 탑승을 환영해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산책을 이어 갔는데 그 순간 마치 풍선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더랬다.

훌륭해지기 위해 노력해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짜릿했던 것.


5.

분노는 우리 시대 여성의 질병이었다. 나는 이 병을 여자들의 얼굴에서, 목소리에서, 사무실로 날아오는 편지에서 본다. 여자가 느끼는 감정은 부당한 현실을 향한 원망이고 이 독성 어린 분노는 비개인적이다. 이 병이 비개인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운 나쁜 사람들은 분노를 남편이나 연인에게 돌린다. 나처럼 운 좋은 여자는 이에 맞서 싸운다.


6.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겠다. 위의 행동에서 어떤 것도 남자가 할 경우에는 유기 행위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문제의 남자가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다. 제니 디스키가 제대로 지적했듯이 남자들은 항상 그렇게 하고 있다.

남자들은 ... 아이들을 너무 자주 떠나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받지도 않는다.


7.

젊은 예술가, 젊은 여성 예술가가 애초에 아기를 갖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 당신이 그저 일하러 나간다는 이유로 아이를 유기했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당신이 이 비난을 필연적으로 내면화하게 된다면, 아이는 생략하고 곧바로 예술로 직행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

주인공이 임신할 때마다 가슴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독서 체험은 갑자기 지루해져서 시들해지기도 했다. 이제 주인공은 사람의 선택권을 잃을 것이다.


8.

우리 가운데 얼룩진 사람에게는 어떤 공감과 연민을 가져야 하나? 그저 실책을 저지른 사람에게 갖는 연민은 어떤가?

..

이 책에서 논의한 최악의 사람들도 한 명의 인간이고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일로만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

나의 페미니즘은 그들의 작품을 소비할 만큼 유연하지만 그 남자들에게 연민을 가질 만큼 유연하지는 않다.


9.

비평가들은 곧바로 "그래서 그 X의 작품은 다 버릴 겁니까?" 라고 물으면서 자본주의 시녀가 되어 문제의 초점을 가해자와 가해자를 지지하는 시스템에서 개인 소비자로 옮긴다.


10.

우리는 물건을 살 때 판단력을 발휘하여 도덕성을 구현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더 나은 소비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

유명인을 비난하고 퇴출시키는 일은 결국 얼룩이 없는 긍정적인 유명인이 있다는 개념을 강화한다. 나쁜 유명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좋은 유명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주입한다. 유명인이란 도덕성의 주체가 아니고 재현 가능한 이미지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작품을 소비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 행위로써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에게는 감정이 남는다. 사랑이 남는다. 예술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세계를 환히 밝히고 넓게 확장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않든 사랑한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얼룩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

이 모든 복잡한 역사와 흐름에서 평범하고 복잡하지 않은 것으로 흘러나온다. 사랑이다.

다시 말해서 정답은 없다. 당신이 그 정답을 찾아야 할 책임도 없다.


11.

이제 당신은 곤경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일관적이지 않다.

거창하고 통일된 이론 같은 걸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신은 계속해서 위선자로 살 것이다.

당신은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없다. 사실 소비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당신이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당신을 나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12.

우리는 괴물 남자들의 예술에 대해 말하면서 실은 더 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문제다.

...

우리 인생에서 끔찍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체로 우리는 그들을 계속 사랑한다.

가족이 버거운 존재인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맡겨진 괴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처럼 무작위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든 가족을 계속해서 사랑해 나가고 사랑하면서 끝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인간의 완전성을 믿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완벽해야 하고 나도 완벽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13.

"개인의 삶에서 그 어떤 계약과 상관없이 한쪽 당사자가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와의 재협상 없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랑의 관계에서든 민주주의란 없다. 자비만 있을 뿐이다."

사랑은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판단을 옆으로 유보하는 결정에 달려 있다. 사랑은 무정부 상태다. 혼돈이다. 우리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성이라는 차가운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기후 시스템인 감정적 논리에서 결점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한다.


출처

클레어 데더러, 『괴물들』, 노지양 옮김, 을유문화사, 2024

본문 인용문은 모두 위 책에서 발췌.

책 표지 이미지 ⓒ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