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의 꿈틀꿈틀] 2. 눈에 덜 띄는 - 이훤

“나를 찾길 잘했다고 여길 만큼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 거다."

by 양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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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덜 띄는> – 다정함으로 써 내려간 위로

이훤 작가를 알게 된 건 이슬아 작가 덕분이다. 그녀의 책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하던 그,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 영상을 (훔쳐)보며 마음 깊이 축하했더랬다. 그의 신작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의 글에는 그의 성격처럼 (물론 나는 그를 직접적으로 만나보지는 못했다.) 다정함과 섬세함이 묻어 나온다. 이훤 작가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순간을 붙잡아 언어로 정리해 주며, 그 속에서 위로를 건넨다.
책을 읽는 동안, 호주에서 지냈던 시절도 떠올랐다. 늘 이방인 같이 느껴지던 순간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친구들도 함께 떠올랐다. 차마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들이었는데, 이훤 작가의 글은 그 마음들을 다정하게 정리해 준다.
<눈에 덜 띄는> 은 제목과 같이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 잔잔하게 오래 남는다. 읽다 보면 어느새 내 안의 조용한 마음들이 불려 나온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의 태도가 남는다.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괜찮다는 말,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라는 것을 알려준다.




1.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우리가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어. 우리도 여러 번 용서받았다는 걸 기억하면서. 냉소는 쉬워. 품이 드는 건 너그러워지는 쪽이지.

그리고 인간은 전부 다르게 뾰족하잖아.


2.

청소년이었던 나와 엄마는 빈번하게 다퉜다. 우리는 어떤 타인보다 서로에게 지독했다. 사랑하는 자들만큼 깊게 할퀼 수 있는 자들도 없다. 묘하게 자기와 닮은 게 싫어서, 그러면서 너무 다른 모습을 견디지 못해서 우리는 상대에게 손톱자국을 많이 냈다.


3.

종찬은 종찬의 방식으로 이상하지만 그런 식의 힘 부리기를 하진 않았다. 외식하면 음식이 맛있다고 종업원에게 감사를 표하는 걸 잊지 않았고 누가 싸움을 걸어와도 웬만하면 져주었다. 그리고 사과를 미루지 않았다. 점잖은 방식으로 아저씨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남자로 살아왔지만 나도 남자에 대해 잘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들에게도 남성성은 오해 돼왔다.


4.

학습된 기제 탓이다.

이 부끄러움에는 뿌리가 있다. 남자들 사이에서 파트너에게 너무 많은 애정을 건네는 모습은 대체로 창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남자답지 않다'라는 수식으로 시작되는 낡은 인식들. 정성스러운 게 왜 수치여야 하나. 당신이 왜 좋은지, 지금 이 삶이 왜 나에게 최고인지 일일이 말하는 것만큼 용감해져야 하는 일이 어딨 는가. 집 안팎에서 지켜본 어른의 궤적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 깊숙이 서식한다. 저도 모르게 닮아간다. 가정과 동네, 학교가 유년의 남자가 참조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반경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출처

이훤, 『눈에 덜 띄는』, 마음산책, 2024

본문 인용문은 모두 위 책에서 발췌.

책 표지 이미지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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